<아파트>/ 송재학/ 《시와시학》2006년 가을호
아파트
내달이면 입주가 시작되는 재개발 아파트는 길 가에 바짝 붙어 있다 8차선 대로의 인도에서 불과 몇 미터, 처음부터 그렇다기 보다는 아파트라는 짐승이 남몰래 뒤뚱뒤뚱 길가로 나앉은 것처럼 보인다
오천 세대 대단지 아파트에 어느날 저녁 일제히 불이 켜졌다 인접한 내집 뿐만 아니라 먼지투성이 마음까지 전선과 전등이 얼기설기 얼킨 연금술이다 폭설이 가둔 고요를 기억하는 세상은 위로 위로만 올라가려는 밝은 부레의 힘이 반갑다
두 눈에만 불빛이 있다면 외면했겠지만 가슴이나 손 끝 어디나 말더듬이 불빛이 먼지여서 성탄절이 지척이다 불빛이 내면적이라는 사실 때문이라도 오늘 그레고리 송가 곁에 바짝 붙어야겠다
[감상]
캄캄한 밤 먼 불빛의 의미는 인가[人家]를 일컫기도 합니다. 그곳에 사람이 살고 그곳에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삽니다. 이 시는 고층아파트라는 문명의 부산물을 <짐승>으로 바라보며 빛을 밀어 올리는 <부레>까지 직관해냅니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이 모여 하나의 건물로 살아가는 풍경에서 삶이란, 그레고리 성가처럼 화음 이루며 연대해 살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묘사와 직관이 강력한 의식에 이끌려 풀리는 흐름이 유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