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 통신>/ 김애리나/ 2006년 《진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나이테 통신
밤새 눈이 내렸다
눈은, 플러그가 다닥다닥 꽂힌
도시를 비껴지나
산간지대까지 나를 따라왔다
민박집에 들어 국수를 말아먹는 동안
산 가까이 전신주가 쓰러지고
모든 전원이 내려앉았지만, 아무도
그와 내가 통화중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언 땅에서 뿌리로 품어 올린 적막한 외로움이
바람의 전류를 타고 흘러
이 밤, 내 전화벨을 울린다는 것
맨 입에 눈뭉치를 삼킨 나무들이
이 계절내 다이얼을 돌리고 있다는 것
어쩌다 잘못 걸려온 전화는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폭설, 끝나고 저 숲에 가면 만날 것이다
외로움의 무게를 못 견디어 부러진
나무의 속살을 나는 단숨에 알아볼 것이다
발설할 수 없는 말을 삼키다 얹힌 자리
나무의 가슴을 까맣게 태운
둥근 나이테가 그런 흔적이다
다이얼을 수없이 돌린 흔적이다
[감상]
멀리 있어도 서로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인류의 오랜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전화의 발명은 개인과 개인, 세상을 이어주는 가장 현실적인 소통수단이겠지요. 이 시는 나무의 <나이테>를 <다이얼을 수 없이 돌린 흔적>으로 보는 탁월한 시선에서 착상됩니다. 원이 수없이 겹쳐진 나이테를 다이얼로 여기는 믿음이, 외로움이라는 아련한 감성과 잇대어지며 개연성이 확보된다고 할까요. 도시를 <플러그가 다닥다닥 꽂힌> 장소로 명명하는 것이나, 나뭇가지에 휘어질듯 쌓인 눈들을 <외로움의 무게>로 감내하는 정서가 잔잔하게 와닿습니다. 나무들이 수없이 다이얼을 돌려 우리와 통화하고자 했던 그리움을 생각하자니, 이 갑갑한 일상에서 울컥 마음의 수화기를 들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