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달리자 아버지》/ 김왕노/ 《시작》 시인선
중간쯤
어지간하다는 중간쯤
나무와 나무의 잠 그 사이 별이 뿌려져 있습니다
어지간하다는 중간쯤
사랑과 그리움 그 사이 밀고 당기는 힘에 의해
꽃이 피어납니다
내가 잊어버리고 당신이 기억하는 그 중간쯤
생이 급회전하려는 그 사이
가끔 급브레이크 소리 날카롭게 나는 사이
갈등과 기다림의 힘으로 눈이 내립니다
건널 수도 말 수도 없는 강의 중간쯤
이름 하나 물살에 휩쓸리나 마나 하는 그 사이
물짐승 한 마리로 내가 웁니다
젖은 눈으로
젖은 얼굴로 신이 버린 내가 웁니다
[감상]
관계에 있어 가깝고 멀고의 중간쯤이 항상 존재하겠지요. 하지만 그 위치를 정확히 계측할 수 있는 장치는 없습니다. 다만 마음이 스스로 그 경계를 넘나들며 흔들릴 뿐이지요. 이 시는 그런 미묘한 감정의 순간을 포착해냅니다. 시인의 눈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람의 마음 뿐 아니라 세상 만물에도 그 이치를 깨닫게 합니다. <꽃>이 피는 것, <눈>이 내리는 것, 그리고 <신>과의 관계까지 확장됩니다. 기실 <신>은 그 <중간쯤>에서 화자를 놓쳐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영영 멀어진 것들, 그리고 외롭게 남겨진 <나>, 도대체 삶은 얼마나 많은 <중간>들을 통과해 기억되는 것인지,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 지금 당신은 안녕하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