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거품인간 - 김언

2005.05.18 14:41

윤성택 조회 수:1626 추천:235

<거품인간> / 김언 / 《창작과비평》2005년 여름호


  거품인간
                                
  그는 괴롭게 서 있다. 그는 과장하면서 성장한다.  한나절의 공포가
그를 밀고할 것이다. 한나절이 아니라 한나절을 버틴 공포 때문에 그
는 잘게 부수어진다.  거품과 그의 친구들이 모두 다른 이름이다.  그
것은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공포 때문에.

  한 번에 일곱 가지 표정을  짓고 웃는다.  그의 눈과 입과 항문과 성
기가 모조리 분비물에 시달린다. 한 명이라도 더 흘러 나오려고 발버
둥을 치는 것이다. 정오에.

  가장 두려운 한낮에 소란을 베껴가며 폭죽은 터진다.  밤하늘의 섬
광이 여기서는 외롭다.  표면까지 왔다가 그대로 튕겨나가는 소음들.  
밖에서는 시끄럽고 안에서도 잠잠한 소란을 또 한 사람이 듣고 있다.
그는 전혀 다른 공간이다. 그는 괴롭게 서 있다.

  공기가 그를 껴안을 것이다.

[감상]
한낮 공원 벤치에서 아이가 부는 비누거품놀이. 이 한가하고 여유로운 풍경이 이 시에서는 인간의 괴로움과 공포로 재탄생됩니다. 천천히 부풀어오는 비누거품은 때로는 터지기도 하고, 때로는 막대 끝에서 날아올라 공중에 떠다니겠지요. 여기서 공포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두려움 같은 것이겠다 싶습니다. 그 비눗방울에게 시인은 의식과 고뇌를 부여합니다. 그리하여 비눗물 속 ‘더 흘러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는’ 또 다른 ‘그’를 발견합니다. 거품의 뚜렷한 안과 밖은 선악(善惡)처럼 전혀 다른 공간이므로 이것을 공존시키는 그는, 괴롭게 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품을 부는 아이의 의지가 우주의 어떤 질서였다면, 탄생과 소멸 앞에 우리는 여전히 거품인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51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2001.06.21 1636 276
950 너무 아름다운 병 - 함성호 2001.12.19 1634 217
949 킬러 - 안시아 2006.09.17 1633 216
948 이발소 그림 - 최치언 2006.01.18 1632 236
947 따뜻한 마음 - 김행숙 2011.01.17 1630 95
946 봄날 - 신경림 2002.07.11 1629 176
945 상처에 대하여 - 복효근 2001.09.25 1627 206
» 거품인간 - 김언 2005.05.18 1626 235
943 장미의 내부 - 최금진 [5] 2005.04.23 1626 181
942 정류장 - 안시아 2004.11.06 1623 194
941 그 날 - 이성복 2001.05.30 1623 257
940 흉터 속에는 첫 두근거림이 있다 - 정영선 2001.07.12 1620 337
939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 2001.06.12 1619 267
938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 박제영 [1] 2008.03.12 1618 132
937 꿈 101 - 김점용 2001.07.06 1618 279
936 중독 - 조말선 2001.07.05 1617 288
935 신문지 한 장 위에서 - 송재학 [2] 2008.07.01 1616 128
934 콘트라베이스 - 이윤훈 2005.12.30 1614 232
933 날 저문 골목 - 안숭범 2006.04.07 1612 250
932 빙어 - 주병율 2006.03.21 1612 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