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봄> / 천수호/ 《서시》 2006년 여름호
아득한 봄
그 안에 내가 똑바로 누워 있다
다시 들어가 누울 때까지
한껏 열려있는 미라의 눈
몇 백 년 전 동침한 남자의 눈과 꼭 닮은,
지하철 옆자리 아기의 눈
꽉 찬 조바심과 팽팽한 호기심으로
두 주먹 탱글탱글 쥔 동공
터져라, 씨앗
새잎과 새싹을 품고 있는 저 눈
지상구간은 잠깐이다
다시 땅으로 기어들어가
봄을 줄줄이 끌고 나오는 열차 속
불쑥 새순 같은 입술을 내미는
몇 백 년 전 그 남자, 이미 아기가 되어버린,
[감상]
불교의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지하철에서의 아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독특합니다. <두 주먹 탱글탱글 쥔 동공>의 아이에서 <몇 백 년 전 동침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시인만의 즐거운 상상력이겠지요. <눈>에 초점을 맞춰 시공간을 넘나드는 흐름은 짧은 시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생략과 응축으로 박진감이 넘칩니다. <지상구간은 잠깐이다>에서 이 시의 매력이 돋보이는데 이 의미는 지하철의 지상구간뿐만 아니라, 땅 속 죽음에서 잠시 떠오른 현생의 삶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윤회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고난이 근본적으로 자신 속에 있고 모든 문제는 자신이 야기 시킨 문제라는 데 있습니다. 잠깐 지나치는 소소한 지하철 풍경일지라도 시인에게는 먼 과거에서 비롯된 극적인 순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