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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우체국 - 김수우

2003.09.12 15:39

윤성택 조회 수:1597 추천:172


「하늘우체국」/ 김수우/ 『현대시학』2003년 9월호

        하늘우체국
        

  시립묘지 납골당 입구 하늘우체국은 열두 달, 가을이다 오늘도 헐렁한
쉐터를 입은 가을이 소인을 찍는 중, 우표 없는 편지들이 시시로 단풍든
다  몰래 지나는 바람에도 말의 잎새더미에서 풍기는 젖은 지푸락 냄새,
말의 송아리, 슴벅이며 돌아본다

  하늘우체국에서  가장 많은 잎새말은 '사랑해요'이다  '미안해요'도 가
랑잎 져 걸음마다 밟힌다 '보고 싶어요'  '또 올께요'도 넘쳐흘러 하늘이
자꾸 넓어진다 산자에게나 망자에게나 전할 안부는 언제나, 같다,  언제
나, 물기가 돈다

  떠난 후에야 말은 보석이 되는가 살아 생전 마음껏 쓰지 못한 말들, 살
아 퍼주지 못한 말들,  이제야 물들며 사람들 몸 속으로 번진다  가슴 흔
들릴 때마다 영롱해진다 바람우표 햇살우표를 달고 허공 속으로 떠내려
가는 잎새말 하나, '내 맘 알지요', 반짝인다



[감상]
납골당의 풍경에서 가을을 읽어내는 것이 새롭습니다. 그 낙엽들이 짧은 사연이 되어 이 생의 가을로 쓸쓸히 지나간 망자를 회상합니다. 사랑해요, 미안해요, 보고 싶어요, 또 올께요의 부분에서 가슴 한켠 치미는 것, 그 절실한 마음이 눈물겹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길을 떠나 아파 본 사람은 압니다. 이 짧은 말들이 편지처럼 전달된다면, 이 말을 그가 알아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람우표 햇살우표를 달고 허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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