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 조동범/ 《문학동네》
들소를 추억하다
골목길 귀퉁이에
자동차 한 대 버려져 있다
앙상하게 바람을 맞고 있는 자동차는
아직도 보아야 할 무엇이 남아 있는지
죽어서도 눈 감지 못하고
골목길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초식동물처럼
뼈대만 앙상한 자동차
자동차는 무리지어 이동하는
초원의 들소떼와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한 마리
늙은 들소를 추억하고 있다
하염없이 초원의 저편을 바라보는 들소는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들소의 눈은 죽음과 맞닥뜨리면서도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무리의 흔적을 좇는다
골목길 귀퉁이에 버려진 낡은 자동차는
초원의 늙은 들소처럼 골목길 너머,
무수히 질주하는 속도의 흔적을 좇는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골목길
눈 감지 못한 죽음이 애처롭게
그 너머를 바라보는,
고요한 속도의 뒤편
[감상]
골목에 오랫동안 방치된 자동차를 시인은 <늙은 들소>로 들여다봅니다. 버려진 자동차의 표식이 그러하듯 이 자동차도 유리가 깨지고 타이어가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찰은 몸을 가눌 수 없는 <눈 감지 못한 죽음>으로 묘사되고, 곧 마치 죽어가고 있는 들소 같다는 환상으로 빨려들게 합니다. 이러한 지배적 이미지는 시 전체에 적절하게 반복 배열됨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동시에, 마치 후렴의 음악처럼 죽어가는 들소를 생생하게 재현해 냅니다. 도시의 자동차는 초원을 그리듯 무리지어 초록이 표시된 길을 달립니다. 그곳에서 이탈한 이 쓸쓸한 풍경은 시집 전체의 주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휘황찬란한 도회지에서 소외되거나 희생되는, 아슴아슴 다름 아닌 우리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