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악어》 / 서영처/ 《열림원》(근간)
파이프오르간
저 길고 짧은 길들 잔뜩 하늘로 매단 악기는
한 그루 실한 나무다
물관 체관으로 양분을 빨아
푸르디푸른 잎사귀 천정으로 피워올린다
열 손가락 발가락 닮은 페달이
노 젓듯 부지런히 흙 속을 파고든다
바람은 몸 깊숙이 박힌 관(管)을 휘저으며
육신의 동굴마다 박쥐들을 깨워 날려보낸다
상하수도와 가스관, 통신케이블 관
누군가 지하에서 불어넣는 숨소리로 도시가 울고 있다
묘지마다 부풀어오른 봉분들의 긴장 좀 봐
달리는 자동차 우는 아이들 굴착기의 굉음,
빌딩의 막대그래프가 춤추며 출력을 그려낸다
파이프오르간이다
아픈 짐승들처럼 먹구름 몰려오고
고층아파트는 오디오 스피커처럼 늘어서서
하모니를 뿜어낸다
도시의 거대한 뿌리,
지하철이 철컥철컥 옥문을 잠그며 지나간다
[감상]
문학과 음악은 서로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음악 쪽에서 본다면 문학은 그야말로 활자로 된 악보를 그린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음악을 전공한 바이올리니스트인 시인은 나무와 도시의 풍경을 강렬한 음악적 직관으로 꿰뚫어봅니다. 나무가 연주하는 <푸르디푸른 잎사귀>하며, <막대그래프가 춤추며 출력>을 그려내는 빌딩의 모습은 다시 봐도 신선한 충격입니다. 시적 대상을 음악으로 확장시키는 스케일 또한 웅장하여서, 소재들의 협연으로 선율과 화성이 빼어난 오케스트라 같습니다. 이 독특한 음악적 사유가 진한 주황색표지의 시집 곳곳에 투영되어 있습니다. 러시아 극장 앞으로 전차가 지나칠 때 문득 시를 쓰고 싶다는 그 절실함, 내내 깃들길 바라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