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2」/ 이윤학/ 《시작》 2004년 봄호
순간 2
대한예수교 장로회 원남교회 우측에는
과거의 영혼을 파먹고 사는 밤나무가
쇳덩이 스피커를 달고 있다
어른 엄지 검지 동그라미 크기 구멍난
쇳덩이 스피커 속으로
얼음물 옥문 하늘이 내려온다
비스듬히 바닥으로 기운
쇳덩이 스피커 아가리
마른 풀 투성이 바닥에
원을 확대시켜 부려놓는다
쇳덩이 스피커는 몇 초
외눈이 꽉 차게 떠돌이
해를 담아본다
짧은 다리 난간 위에 올라
쇳덩이 스피커를 바라보는
미친 데기 남자,
삭은 나뭇가지 그늘을 걸치고
눈을 찡그린다
[감상]
순간에 대한 포착, 그리고 그것을 유화로 그려낸 것 같은 풍경. 이미지는 전체 분위기를 거느리고 한 폭의 그림처럼 활자에 박힙니다. 한겨울 스피커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얼어버린 바닥의 동심원과, 햇살로 인해 찡그린 채 그 스피커를 올려다보는 미친 사내.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화폭에 거친 면을 그대로 살려낸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