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이 벗겨진 나무는 엎드려 울지 않는다> / 한우진 / 《시인세계》2005년 봄호, 신인당선작 中
등이 벗겨진 나무는 엎드려 울지 않는다
- 부록
1
군데군데 어둠에 손을 데인 어머니
늦게 오시고, 숙제는 하지 못했다
다른 집들이 오순도순 숟가락을 부딪칠 때 나는
우물에 가서 감자를 씻었다
교복을 벗지 않고 입은 채로 잤다
꿈이지만, 지겨운 지게야 더러운 지게야, 구덩이를 팠다
2
알록달록 연애가 끝나고
아내는 반지하 단칸방에 도배를 했다
사진을 걸면서 새가 되세요
와이셔츠 흰색은 빛났다
나는 돌멩이가 핀 구두를 신고
어둠을 내려놓고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3
도란도란 사월이 꽃을 낳고
화병에 꽂힌 딸은 두각을 나타냈다
내 등에 꽃잎을 파스처럼 붙이면서 회춘回春하세요
작업복은 회청回靑을 쏟은 듯 좋구나
나는 철공소에서 늦도록 못을 만들고
못대가리처럼 쓰러져 막차로 돌아왔다
4
이리저리 밥상 겸 책상은 삐거덕거렸다
부푼 꽃, 무거운 꽃, 화병을 놓을 데가 없구나
내 시는 혁명이 지나간 뒤의 깃발처럼 구겨졌다
기울어진 가계家系에 찬바람 드는 창문만 늘어났다
아내는 처녀적 옷으로 커튼을 만들고
덜컹덜컹 나는 낯선 어둠을 묻힌 채 문 앞에서 서성댔다
5
삐걱빼각 아침이 되자
내가 가지고 온 못은 모조리 녹슬었다
[감상]
유년부터 전개되는 다섯 개의 장면이 고단한 삶을 되짚어보게 합니다. ‘어둠’으로 상징되는 삶의 배경, 그리고 ‘못’으로 상징되는 자아의 정체성이 아슴아슴 느껴집니다. 특히 단호하게 이어지는 문장 맥락마다 낯선 이미지를 결합시키는 힘이 있는데, 곳곳 시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군요. 마지막 녹슨 못에 대한 인식은 다름 아닌 스스로에 대한 성찰적 발견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