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미치겠네 - 함성호

2005.07.26 10:38

윤성택 조회 수:1961 추천:215

<미치겠네> / 함성호 / 《현대문학》2005년 8월호



        미치겠네

        우체국에 불이 났다네
        우리집 차도와 인도의 경계석이 박살났네
        며칠은 청구서가 배달되지 않겠다고
        사람들은 불구경을 하면서도
        우리집 경계석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네
        미치겠네
        경계석이 무너진다고 악을 써대도
        소방관들은 한가롭게 불꽃에 물을 주고 있네
        아내는 큰일났다 큰일났다 하면서도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나는 경계석 근처에서 안타까워 떠날 수 없네
        미치겠네
        바퀴는 너무 무거워
        우리집 경계석이 버틸 수 없네
        아무도 우체국에 맡긴 사연은 없는지
        사람들은 불꽃에 귀를 기울이다
        집으로 돌아가 고기를 굽고 있네
        미치겠네
        우리집 경계석은 모양도 좋고 높이도 적당해서
        앉아 있기 좋았다네
        우체국에 불이 났다네
        우리집 경계석도 박살났다네
        미치겠네


[감상]
내것이다라고 단정한 것들에게 <미치겠네>는 집착의 ‘감탄사’입니다. 우체국에 불이 났는데 경계석타령이나 하고 있는 화자를 통해, 소유욕이 얼마나 마음을 옭아매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이러한 이기심이 작용하면 <소방관들은 한가롭게 불꽃에 물을 주고 있네>의 빼어난 비유조차 당사자의 절박함으로 읽힙니다. 함성호 시인은 건축가입니다. 사실 건축가가 설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이웃 필지와의 소소한 경계다툼에서 진이 빠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내땅 니땅 하면서 핏대를 세우다보면 경계석이 올라가고, 그것을 지키느라 쩔쩔매는 모습이 불난 옆집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체통이 유난히 붉어, 하는 말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11 활엽 카메라 - 김정미 [1] 2005.02.28 1259 217
910 그 저녁 - 김다비 [1] 2004.11.29 1511 217
909 잠들기 전에 눈물이 - 강인한 [3] 2004.03.24 1563 217
908 순간 2 - 이윤학 2004.03.04 1414 217
907 가시 - 남진우 [1] 2002.03.14 1327 217
906 너무 아름다운 병 - 함성호 2001.12.19 1634 217
905 벌들의 진동 - 이선형 2006.12.18 1372 216
904 콜라병 기념비 - 장이지 [1] 2006.12.07 1333 216
903 공사 중 - 최규승 [1] 2006.11.08 1408 216
902 산후병동 - 김미령 2006.09.27 1419 216
901 킬러 - 안시아 2006.09.17 1633 216
900 간질, 꽃이 꽃 속으로 들어가 - 이덕규 2005.06.03 1223 216
899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 길상호 2003.01.14 1300 216
898 그곳 - 이상국 2002.11.27 1076 216
897 몰입 - 고영민 2002.06.12 1216 216
896 오지 않네, 모든 것들 - 함성호 2001.08.17 1527 216
895 사랑이 나가다 - 이문재 2006.06.30 2289 215
» 미치겠네 - 함성호 [2] 2005.07.26 1961 215
893 등이 벗겨진 나무는 엎드려 울지 않는다 - 한우진 2005.05.13 1525 215
892 네 사소한 이름을 부르고 싶다 - 박소원 [1] 2005.01.18 1656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