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벌들의 진동 - 이선형

2006.12.18 11:50

윤성택 조회 수:1372 추천:216

<벌들의 진동>/ 이선형/ 《문학마당》 2006년 겨울호


        벌들의 진동

        눈도, 입도 없는 혼자라는 곳
        먼지의 풀썩이는 춤 아래서
        
        자두꽃 아래서 친구들은 술을 마시다 실컷 찢어져 부어올라
        더러는 울고 더러는 웃는다

        자두꽃 향기는 권투선수가 주먹을 날리는 것처럼,
        휘청 보이지 않는 가지가 흔들리고
        자두꽃 향기는 아무도 없는 링에서,
        혼자 수없이 뻗는 주먹이 날아가 허공을 때리고
        자두꽃 향기는 찢어 터지고 부어오른 눈두덩이,
        땀을 흩으며 벌들이 솟아오른다

        친구는 미소로 내게 자두꽃 한 가지를 꺾어준다
        한 주먹을 날리는 거다
        하지만 그쯤이야, 나는 벌써 벌처럼 피하지

        눈도, 입도 없는 혼자라는 곳
        먼지의 풀썩이는 춤 아래서        


[감상]
자두꽃 나무 아래서 도란도란 모인 친구들, 그리고 웃거나 우는 친구의 표정들, 얼굴 가득 주름이 잡혀 터진 자두 같은 친구들. 이 시를 읽다보면 이미지의 형상화가 참 새콤하게 이루어졌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시의 가장 빼어난 부분은 <권투선수가 주먹을 날리는 것>을 자두로 비유한 것에 있습니다. 자두의 붉고 둥근 모양이 권투 글러브가 되는 상상력, 누구도 생각 못할 시인만의 형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911 활엽 카메라 - 김정미 [1] 2005.02.28 1259 217
910 그 저녁 - 김다비 [1] 2004.11.29 1511 217
909 잠들기 전에 눈물이 - 강인한 [3] 2004.03.24 1563 217
908 순간 2 - 이윤학 2004.03.04 1414 217
907 가시 - 남진우 [1] 2002.03.14 1327 217
906 너무 아름다운 병 - 함성호 2001.12.19 1634 217
» 벌들의 진동 - 이선형 2006.12.18 1372 216
904 콜라병 기념비 - 장이지 [1] 2006.12.07 1333 216
903 공사 중 - 최규승 [1] 2006.11.08 1408 216
902 산후병동 - 김미령 2006.09.27 1419 216
901 킬러 - 안시아 2006.09.17 1633 216
900 간질, 꽃이 꽃 속으로 들어가 - 이덕규 2005.06.03 1223 216
899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 길상호 2003.01.14 1300 216
898 그곳 - 이상국 2002.11.27 1076 216
897 몰입 - 고영민 2002.06.12 1216 216
896 오지 않네, 모든 것들 - 함성호 2001.08.17 1527 216
895 사랑이 나가다 - 이문재 2006.06.30 2289 215
894 미치겠네 - 함성호 [2] 2005.07.26 1961 215
893 등이 벗겨진 나무는 엎드려 울지 않는다 - 한우진 2005.05.13 1525 215
892 네 사소한 이름을 부르고 싶다 - 박소원 [1] 2005.01.18 1656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