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모양의 얼룩》/ 김이듬/ 《시작》
욕조들
물 속에서 팔을 꺼내 젖은 귀를 전화기에 쑤셔 넣었어요-빨리 빨리 나와, 대기하던 젖은 차 안에서 몸을 비스듬히 눕히고 빗소리를 들었지요 나는 절수형 샤워기를 틀어놓고 나왔어요-급하니 빨리 빨리 빨아, 이만큼 빨았으면 몸체를 떠난 전화기는 물을 먹지 않았을 거야 문지방을 넘어 카펫을 적시지 않았을 테지 막힌 주둥이의 하수구로 오줌과 정액이 역류하는 대로 다 삼켜-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포르노그라피가 되지, 나의 상체가 꺾어져 운전대 아래에서 주억거리는 사이, 그의 입은 강의실에서 앤디 워홀을 분석하고 나의 말라빠진 다리는 계단을 올라가 출석 체크를 하고 끝자리에 포개져 사실적으로 졸고 있었어요 두 시간짜리 연강이었지요 꼬물락거리던 민가를 덮친 왕릉을 통과해 경주 남산에서 옷을 꺼내 걸쳤어요-자발적 협조가 해리 장애를 극복하지, 빗물 때문에 와트만지가 다 젖었어요 저 해머로 두들긴 것 같은 여래상을 스케치해야 되는데, 계곡에 잘려져 담긴 풍만한 궁둥이 하녀가 잘 닦아놓은 것 같은 중세의 석제욕조, 열고 하고 뒷물을 또 하네요 과연 다르죠 갈등 없이(자발적으로) 분리된 상반신에서 쩡쩡거리는 설법 갓갓 골짜기에 싱싱한 알몸, 공염불 근데 내 집에 두고 온 고무공 만한 자궁은 제 것을 다 씻었을까요
[감상]
구도나 편집 등이 기발한 영화적 기법으로 읽히는군요. 욕조에 대한 상상력이 환상처럼 현실을 오가며 오럴에서 강의실로, 경주 남산으로 오버랩 됩니다. <빨리>와 <빨아>의 변화에서 알 수 있듯 이 시는 욕망과 상상을 옮겨 다니며 정체성을 찾아갑니다. 퇴폐적인 <포르노그라피>가 아니더라도 현대인이 품고 있는 의식의 흐름과 내면적 질서가 여러 각도에서 조명되었다고 할까요. 여하간 독백체와 자의식이 강한 여느 시들과는 또 좀 다른, 분명하고 개성이 뚜렷한 색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