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예수를 리메이크하다 - 문세정

2005.10.18 11:41

윤성택 조회 수:1505 추천:220

<예수를 리메이크하다> / 문세정/ 《시인세계》2005년 신인상 당선작 中


        예수를 리메이크하다

        그는 늘 트로트 찬송가를 부르며 나타난다
        목에 걸린 소형 녹음기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지하철 4호선 구간을 뱅뱅 돈다
        칸칸마다 음표처럼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하루 종일 연속 재생되는 그의 노래
        언젠가, 눈앞이 온통 암흑으로 변하고
        자기도 모르게 목울대가 약해지고부터
        그의 찬송가는 트로트 버전이 되었다
        <샤론의 꽃 예수>를 4분의 4박자로 꺾었고
        흥겨운 대목에선 바이브레이션을 넣기도 했다
        한 소절 한 소절 깜깜한 세상을 귀로 읽으며
        새 음표를 붙이고 장조를 바꾸다 보면
        아주 가끔씩 바구니 속으로 떨어지는
        동전소리도 그의 귀엔 취타악기음으로 들렸다
        퇴근길 풀죽은 몸들을 싣고
        지루한 음보로 달리고 있는 객차 안
        아주 느린 몸동작으로 악보를 넘기듯
        다음 칸을 향해 그가 나를 지나쳐 가고
        중간 중간 박자를 놓친
        지하철이 황급히 허리를 틀며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다


[감상]
구원의 상징인 <예수>가 지하철에 등장합니다. 골고다 언덕에서처럼 십자가 지고 피를 흘리며 가다가 쓰러지고 일어서던 그 길이, <트로트 찬송가>가 있는 <객차>로 바뀐 것이지요. 이처럼 시는 <예수>의 의미를 고정된 관념에서 벗겨내면서, 긴장으로 임펙트 시킵니다. <깜깜한 세상을> 귀로 읽는다든지, <동전소리>가 취타악기음이 된다든지, 굴곡을 따라 휘어지는 객차 칸칸을 <중간 중간 박자를 놓친 지하철>로 관찰해내는 시선도 참신합니다. <눈앞이 온통 암흑으로 변하고/ 자기도 모르게 목울대가 약해지고부터/ 그의 찬송가는 트로트 버전이 되었다>라는 우회적 표현은, 변질된 믿음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 대한 일갈이 아닐까 싶습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851 겨울 저녁의 시 - 박주택 2005.11.12 1982 220
850 낙엽 - 이성목 [2] 2005.11.10 2520 228
849 돌아가는 길 - 문정희 2005.11.09 1990 208
848 분갈이 - 정용기 2005.11.05 1414 213
847 옥상 - 정병근 [3] 2005.11.03 1847 227
846 해바라기 - 조은영 [1] 2005.11.01 3023 251
845 빨간 모자를 쓴 사내 - 문신 [1] 2005.10.28 1756 207
844 흐린 하늘 - 나금숙 [2] 2005.10.27 2208 243
843 12월 - 강성은 [3] 2005.10.26 2075 240
842 객관적인 달 - 박일만 [3] 2005.10.25 1639 222
841 무대 - 유종인 [1] 2005.10.24 1487 202
840 이 전대미문의(신생아실에서) - 이경림 [1] 2005.10.22 1192 184
» 예수를 리메이크하다 - 문세정 2005.10.18 1505 220
838 파문 - 신현정 2005.10.17 1492 210
837 밀실의 역사 - 권혁웅 2005.10.13 1446 226
836 떨어진 사람 - 김언 2005.10.12 1606 189
835 십자로 - 이동호 2005.10.11 1547 222
834 홈페이지 - 김희정 [2] 2005.10.07 1698 236
833 꽃피는 만덕 고물상 - 권현형 [2] 2005.10.06 1458 221
832 욕조들 - 김이듬 2005.10.05 1323 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