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객관적인 달 - 박일만

2005.10.25 16:25

윤성택 조회 수:1639 추천:222

〈객관적인 달〉/ 박일만/ 《현대시》 2005년 10월호 신인당선작 中


        객관적인 달

        1
        저문 당신의 정원은 관습처럼 교교하다.
        서늘한 눈빛으로 당신의 정원을 흔드는,
        나는, 객관적인 달이다.
        망연한 허공 그 중심을 듣고 서서
        은하계와 내통하는 은밀함으로
        오늘밤 당신과 불온한 인연을 맺고 싶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도저히
        건널 수 없는 무채색의 들판을 키우고,
        수심 가득한 책을 읽는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목소리로,
        당신의 이름을 부른다, 성호를 긋듯,
        마, 리, 아

        2
        당신, 내 안에 있군요.
        무수한 시간 속에 나를 저장하는군요.
        쿵쾅거리는 심장의 격렬함,
        마음속 깊이
        희미한 의식에 전깃불이 들어오면서
        붉은 피가 흐르네요.
        오래 전에 꾸었던 꿈의 한 장면이
        스, 크, 랩, 되, 네, 요.
        내가 당신 안에 있어도 될까요?
        추억 속에 깨알 같은 시간을 슬어 놓고····


[감상]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미립자의 배열로 점멸하는 세계입니다. 마찬가지로 컴퓨터 모니터 상의 세상도 픽셀(화소)의 점멸로 이뤄진 공간이지요. 인터넷 보급율 세계1위, 우리는 사이버 상의 아이템 등을 현금으로 거래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점점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져, 끝내 두 세계는 단지 <해상도의 차이>로 구분될지 모릅니다. 이 시는 그런 현실과 가상의 <달>을 <객관적>으로 미립자와 픽셀의 단위처럼 계측합니다. 신(神)에게 조차 가호를 비는 현실과 가상이 혼융된, 스산한 징후가 낯설고 독특하게 읽히네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851 겨울 저녁의 시 - 박주택 2005.11.12 1982 220
850 낙엽 - 이성목 [2] 2005.11.10 2520 228
849 돌아가는 길 - 문정희 2005.11.09 1990 208
848 분갈이 - 정용기 2005.11.05 1414 213
847 옥상 - 정병근 [3] 2005.11.03 1847 227
846 해바라기 - 조은영 [1] 2005.11.01 3023 251
845 빨간 모자를 쓴 사내 - 문신 [1] 2005.10.28 1756 207
844 흐린 하늘 - 나금숙 [2] 2005.10.27 2208 243
843 12월 - 강성은 [3] 2005.10.26 2075 240
» 객관적인 달 - 박일만 [3] 2005.10.25 1639 222
841 무대 - 유종인 [1] 2005.10.24 1487 202
840 이 전대미문의(신생아실에서) - 이경림 [1] 2005.10.22 1192 184
839 예수를 리메이크하다 - 문세정 2005.10.18 1505 220
838 파문 - 신현정 2005.10.17 1492 210
837 밀실의 역사 - 권혁웅 2005.10.13 1446 226
836 떨어진 사람 - 김언 2005.10.12 1606 189
835 십자로 - 이동호 2005.10.11 1547 222
834 홈페이지 - 김희정 [2] 2005.10.07 1698 236
833 꽃피는 만덕 고물상 - 권현형 [2] 2005.10.06 1458 221
832 욕조들 - 김이듬 2005.10.05 1323 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