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높고 쓸쓸한/ 안도현/ 문학동네
연애
연애 시절 그때가 좋았는가
들녘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있던 시절
사시사철 바라보는 곳마다 진달래 붉게 피고
비가 왔다 하면 억수비
눈이 내렸다 하면 폭설
오도가도 못하고, 가만 있지는 더욱 못하고
길거리에서 찻집에서 자취방에서
쓸쓸하고 높던 연애
그때가 좋았는가
연애 시절아, 너를 부르다가
나는 등짝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다
무릇 연애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기에
문득 문득 사람이 사람을 벗어버리고
아아, 어린 늑대가 되어 마음을 숨기고
여우가 되어 꼬리를 숨기고
바람 부는 곳에서 오랜 동안 흑흑 울고 싶은 것이기에
연애 시절아, 그날은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
우리가 서로 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뜬다
연애 시절아, 그것 봐라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 아니냐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
[감상]
편안한 시를 읽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시대가 어지러울수록 시는 단정해야 하고, 시대가 차가울수록 시는 따뜻한 위치에 서 있어야한다는 시인의 글을 생각해봅니다. '연애'라는 단어는 여전히 설레여서, 그 안에서는 남녀주인공 빼고 모두가 엑스트라입니다. 이 시는 그러한 감정의 순간을 잔잔한 영화처럼 보여줍니다. 인생에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없습니다. 적당한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나이가 기다려주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연애시절, 그날은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사랑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가 아니냐고 묻습니다. 기적소리로 다가오는 기관차, 이처럼 삶은 끝끝내 가슴 따뜻한 세상으로 달려 갔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