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어리석고, 가난했던/ 장만호/ 고려대 국문과 문창반 문집
김밥 마는 여자
눈 내리는 수유 중앙 시장
가게마다 흰 김이 피어오르고
묽은 죽을 마시다 보았지, 김밥을 말다가
문득 김 발에 묻은 밥알을 떼어먹는 여자
끈적이는 생애의 죽간竹簡과
그 위에 찍힌 밥알 같은 방점들을,
저렇게 작은 뗏목이 싣고 나르는 어떤 가계家系를
한 모금 죽을 마시며 보았지
시큼한 단무지며 시금치며
색색의 야채들을 밥알의 끈기로 붙들어 놓고
붓꽃 같은 손이 열릴 때마다 필사되는
검은 두루마리, 이제는 하나가 된
그 단단한 밥알 속에서 피어오르는
삼색의 꽃들을
[감상]
장만호 시인은 이번 년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입니다. 연전에 뵐 기회가 있었는데, 푸근하고 선한 웃음이 인상적인 분입니다. 이 시는 김밥을 마는 여자를 통해, 발견하는 시적 정서가 새롭습니다. 특히 "붓꽃 같은 손이 열릴 때마다 필사되는/ 검은 두루마리, 이제는 하나가 된/ 그 단단한 밥알 속에서 피어오르는/ 삼색의 꽃들을"의 "꽃"에 대한 부분이 그렇습니다. 이렇듯 좋은 시는 "새롭다"의 낯선 울림이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