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밤의 편의점 - 권지숙

2011.01.20 11:01

윤성택 조회 수:1077 추천:99


《오래 들여다본다》/  권지숙 (1975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 《창비시선》325

          밤의 편의점

        밤은 지키는 자의 것
        한밤중 지친 꿈길 위의 모퉁이
        어둠을 제압하는 하얀 불 활짝 켜고
        턱 고이고 노려보고 있죠
        불쑥, 침입자가 구원처럼 나타나면
        드르르륵, 냉장고가 진저리를 치고
        하루 25시간 AM에서 PM까지
        야맹증의 시간들을
        초록 눈의 고양이와 함께 눈에 불을 켜고
        속수무책으로 지켜요
        말할 수 없는 비애의 순간들
        안개가 스멀스멀 스스로를 지우며
        도시의 지붕 위를 두리번거릴 즈음
        중천에서 떠돌던 자들도 어슬렁어슬렁 주문을 외며
        돌아와요 공복의 텅 빈 길 위에도
        사막 같은 아침이 오기는 오겠죠
        푸른 달빛이 찬 길바닥에 얼룩처럼 스며들 때
        살찐 남자 하나 계단에 드러누워
        상형문자로 불안한 잠꼬대를 하고
        마침내 도시의 아침은 모퉁이에 숨어 기다려요
        밤은 찾는 자의 것
        당신은 모르죠?


[감상]
도시의 밤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이 편의점입니다. 대부분 인간은 생래적으로 밤에 잠을 자야만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대한 편의인 것입니다. 이 시는 관찰자적 시점에서 도시의 한 편의점을 들여다봅니다. ‘밤은 지키는 자의 것’에서 알 수 있듯, 졸음으로부터 무언가를 잃거나 침해당하지 아니하도록 보호하거나 감시하는 이미지가 전체적인 주조를 이룹니다. ‘어둠을 제압하는 하얀 불’, ‘공복의 텅 빈 길 위’, ‘아침은 모퉁이에 숨어’ 등의 표현에서 이 시의 관조의 깊이를 느껴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71 첫 키스 - 함기석 [3] 2008.04.08 2527 192
1170 낙엽 - 이성목 [2] 2005.11.10 2520 228
1169 눈을 감으면 - 김점용 [1] 2011.01.22 2491 113
1168 나는 기억하고 있다 - 최승자 2010.02.18 2484 192
1167 편지 - 이성복 2001.08.09 2480 271
1166 세월의 변명 - 조숙향 [1] 2001.04.09 2476 273
1165 사랑 - 김요일 2011.04.04 2460 158
1164 2006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1] 2006.01.02 2454 270
1163 꽃들에게 묻는다 - 채풍묵 [1] 2008.04.01 2436 187
1162 가을에는 - 최영미 [3] 2001.08.31 2431 235
1161 어느 가난한 섹스에 대한 기억 - 김나영 2006.07.04 2417 236
1160 가로등 - 한혜영 [1] 2006.03.27 2384 277
1159 사랑 - 고영 [5] 2005.03.08 2366 219
1158 봄의 퍼즐 - 한혜영 [2] 2001.04.03 2353 313
1157 오래된 마루는 나이테가 없다 - 차주일 [1] 2005.09.29 2314 254
1156 민들레 - 김상미 [4] 2005.04.26 2314 217
1155 2005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8] 2005.01.03 2299 229
1154 빈집 - 박진성 2001.12.05 2285 196
1153 사랑이 나가다 - 이문재 2006.06.30 2283 215
1152 연애 - 안도현 2001.04.20 2279 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