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또 극단이라고 타박할 것이다』 / 윤이나 / 『시와반시』창간 10주년 기념 앤솔로지
수은 온도계
4월엔 나무도 울고 웃었다 수은 온도계를 잃어 버려 체온을 잴 수가 없다
아스피린 한 알이 나의 무기력함을 달래 준다면 난 차라리 죽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 사랑은 또 극단이라고 타박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나무에 목
을 매지만 않으면 된다고 우길 것이다 4월엔 나무도 울고 웃었다, 나무는
붉은 잇몸을 드러내며 제 몸을 불사른다 그러면 나는 나무가 수은온도계
를 땅 속 깊은 뿌리에 품고 있을 것이라며 의심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식빵 먹던 하얀 입을 하고 사진을 찍을 것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찍은 단체
사진일 것이다 4월엔 나무도 울고 웃었다, 나는 4월 나무의 웃음을 팔아
수은온도계를 사올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나무에 올라가 꽃이 될 것이다
그러면 난 다시는 4월에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감상]
이 시는 마치 감기를 앓는 아이가 온도계를 입에 물고 칭얼대는 듯한 어조가 재미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4월의 나무'로 비유되는 '사랑'이라는 미묘한 감정의 실루엣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도 울고 웃고 '사랑'또한 인격체로 타박을 하는 상상력, 마치 팔을 툭 치고 달아나는 소녀처럼 새침한 감정 표현이랄까요. 한편 생각해보면 우리네 삶은 죄다 울고 웃는 희노애락의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유한한 인생에 있어서 이러한 질곡은 좀더 삶을 모색하는 수단이 됩니다. 4월이 되면 나무도 꽃을 위해 몸살을 앓을 것이고, 단체사진을 찍던 소녀도 초경이 시작될 것입니다. 매번 우리에게도 4월은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