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신인상 당선작 中/ 박진성 / 현대시
빈집
당신은 내게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음악 파일을
보내왔다 나는 비상구를 찾고 있었고 아득한 계단의 끄트머리쯤
당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벼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측백나
무 한 그루가 늦겨울의 햇살을 찌르고 있었고 낡은 모니터가 나뭇
가지에 걸려 있었다 메일이 세 통 와 있었고 꿈결인 듯 잠결인 듯
당신의 머릿결이 만져졌다 나의 신경은 날카로워져서 마우스의 화
살처럼 뾰족한 측백나무 이파리를 자꾸만 떼어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부팅이 되지 않았다 죽은 歌手들이 살던 당신의 집은 검
은 비닐봉지 같은 모니터에 잠기고, 계단의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당신의 집에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황사 무렵, 반지하 방 낮은 창으로 모래가 쓸려와 마우스가 서걱
거렸다 까끌까끌한 손으로 당신의 집을 찾아갔을 때 당신이 쓴 詩
라든가 음악 파일 몇 개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죽은 가수는
계속 노래하고 있었고 브룩클린으로 간 당신을 생각하자 나는 윈
도우 종료음처럼 쓸쓸해졌다 암호 같은 사랑, 내가 0이었을 때 당
신은 1이었을 뿐 그랬을 뿐
[감상]
컴퓨터가 일상화된 요즘, "암호 같은 사랑"에서 볼 수 있듯이 이메일과 사랑에 대한 쓸쓸함이 묻어납니다. 시도 진화하는 것이라면 이제 인터넷도 삶의 방식이며 또한 울림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은 가수 김광석의 노래와 그녀의 홈페이지, 이메일 주소, 이진법의 기호들… 그것들이 하나의 쓸쓸함으로 종료되는 윈도우 종료음. 당신도 접속하고 있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