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랑이 나가다 - 이문재

2006.06.30 14:10

윤성택 조회 수:2283 추천:215

<사랑이 나가다> / 이문재/ 《현대문학》 2006년 7월호


        사랑이 나가다
            - 손 이야기 1                

        손가락이 떨리고 있다
        손을 잡았다 놓친 손
        빈손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랑이 나간 것이다
        조금 전까지는 어제였는데
        내일로 넘어가버렸다

        사랑을 놓친 손은
        갑자기 잡을 것이 없어졌다
        하나의 손잡이가 사라지자
        방 안의 모든 손잡이들이 아득해졌다
        캄캄한 새벽이 하얘졌다

        눈이 하지 못한
        입이 내놓지 못한 말
        마음이 다가가지 못한 말들
        다 하지 못해 손은 떨고 있다
        예감보다 더 빨랐던 손이
        사랑을 잃고 떨리고 있다
        
        사랑은 손으로 왔다
        손으로 손을 찾았던 사람
        손으로 손을 기다렸던 사람
        손은 손부터 부여잡았다

        사랑은 눈이 아니다
        가슴이 아니다
        사랑은 손이다
        손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손을 놓치면
        오늘을 붙잡지 못한다
        나를 붙잡지 못한다
        

[감상]
때론 논리보다 앞서 <손>이 가기도 합니다. <손>은 우리 몸 중 가장 민감한 감각 수단이어서 의식하는 순간 동시에 반응하곤 합니다. 이 시는 <사랑>에 대한 감정을 <손>의 입장에서 풀어냄으로서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냅니다. 30여 개의 뼈로 구성되어 있는 손이, 대뇌신경 3분의 1을 차지하는 손이, 이별의 마지막 감촉과 끝내 잡지 못한 아쉬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 최전방에서 오로지 실천이 전부인 손은 그래서 <사랑>의 절박함과 같이 합니다. 한 문장 한 문장 그 자체가 시인, <떨리는 손>처럼 감성으로 안내하는 시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71 첫 키스 - 함기석 [3] 2008.04.08 2527 192
1170 낙엽 - 이성목 [2] 2005.11.10 2520 228
1169 눈을 감으면 - 김점용 [1] 2011.01.22 2491 113
1168 나는 기억하고 있다 - 최승자 2010.02.18 2484 192
1167 편지 - 이성복 2001.08.09 2480 271
1166 세월의 변명 - 조숙향 [1] 2001.04.09 2476 273
1165 사랑 - 김요일 2011.04.04 2459 158
1164 2006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1] 2006.01.02 2454 270
1163 꽃들에게 묻는다 - 채풍묵 [1] 2008.04.01 2436 187
1162 가을에는 - 최영미 [3] 2001.08.31 2431 235
1161 어느 가난한 섹스에 대한 기억 - 김나영 2006.07.04 2417 236
1160 가로등 - 한혜영 [1] 2006.03.27 2384 277
1159 사랑 - 고영 [5] 2005.03.08 2366 219
1158 봄의 퍼즐 - 한혜영 [2] 2001.04.03 2353 313
1157 오래된 마루는 나이테가 없다 - 차주일 [1] 2005.09.29 2314 254
1156 민들레 - 김상미 [4] 2005.04.26 2314 217
1155 2005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8] 2005.01.03 2299 229
1154 빈집 - 박진성 2001.12.05 2285 196
» 사랑이 나가다 - 이문재 2006.06.30 2283 215
1152 연애 - 안도현 2001.04.20 2279 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