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티스트 - 하재연

2009.11.17 18:00

윤성택 조회 수:927 추천:108

  <로맨티스트> / 하재연 (2002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 《서시》 2009년 가을호

          로맨티스트

        어제는 당신을 만났고
        오늘은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내일까지
        이곳에서 살아있을 것이다
        햇빛이 이렇게 맑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한 친구는 자살을 했다
        장례식에서 우리는 십년 만에 만나
        소풍을 떠나는 꿈을 꾼다
        기차를, 기차를 타고
        내년 겨울 우리는 모두 다른 나라에서
        어떤 나라의 겨울은 또 다른 나라의 겨울과
        어떻게 다른지
        눈이 녹고 나면 강물은 더 차가워지는지
        떨어진 벚꽃의 분홍은 어디로 갔는지
        나는 쭈글쭈글한 아이를 낳고
        그 조그만 아이를 업고서
        시장을 볼 것이다
        몇 개의 봉지들을 들고 거리에서 만나
        우리는 모든 걸 감추거나
        모든 걸 드러낸다
        햇빛이 이렇게 눈부셔서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친구들은 빅토리를 그리며 사진을 찍을 것이다
        당신도 다른 나라에서 돌아와
        흰 셔츠와 검은 셔츠를 입고
        하객이거나 문상객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견딜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살아간다
        
        
[감상]
당신과 나, 우리는 시간을 공유하며 지금껏 생존(?)하고 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돌이켜보더라도 나와 당신은 여전히 친구이며, 우리이겠지요. 나와 당신 혹은 우리에게 있어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당신이, 우리가, 의지로서 ‘나’를 기억해내는 것일 것입니다. 모든 관계는 이러한 의지로 인해 시간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 시는 긍정과 부정, 탄생과 죽음, 웃음과 울음, 흰색과 검은색, 하객과 문상객이라는 양 극단을 ‘삶’이라는 큰 틀로 비끄러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들이 이러한 양 극단에서 정형화되고 있다고 할까요. 이러한 진술방식, 그것이 로맨티스트-낭만주의자들의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이 보편성의 범주에 우리가 있다고 말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71 겨울 모스크바 편지 - 김성대 [1] 2011.02.11 1789 128
1170 한순간 - 배영옥 [1] 2011.02.08 1475 123
1169 잠 속의 잠 - 정선 [1] 2011.02.07 1258 119
1168 구름 편력 - 천서봉 [1] 2011.02.01 1137 128
1167 부리와 뿌리 - 김명철 [1] 2011.01.31 1004 109
1166 부레 - 박현솔 2011.01.29 816 108
1165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 류근 2011.01.28 1259 114
1164 불우를 씻다 - 유정이 2011.01.27 896 112
1163 죽도록 - 이영광 [1] 2011.01.26 1219 111
1162 녹색 감정 식물 - 이제니 2011.01.24 1067 123
1161 눈을 감으면 - 김점용 [1] 2011.01.22 2491 113
1160 밤의 편의점 - 권지숙 2011.01.20 1077 99
1159 무가지 - 문정영 2011.01.18 924 103
1158 따뜻한 마음 - 김행숙 2011.01.17 1631 95
1157 빙점 - 하린 2011.01.15 941 81
1156 내 그림자 - 김형미 2011.01.14 1014 84
1155 그믐 - 김왕노 2011.01.13 782 75
1154 브래지어를 풀고 - 김나영 2011.01.12 1087 78
1153 바다의 등 - 차주일 2011.01.11 807 67
1152 와이셔츠 - 손순미 2011.01.10 752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