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존 주의보 2 - 문정영

2001.04.07 10:55

윤성택 조회 수:1846 추천:299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시집




오존 주의보2


문정영


1.
내가 자주 가던 병원의 흰 건물에도
오존주의보의 깃발이 걸렸다
체온계를 입 속에 끼워주는
간호사의 얼굴이 푸석 이는 나뭇잎으로 흔들린다
의사의 진단이 어려운 문자로 쓰여질수록
병명은 짙은 스모그에 묻히고,
나는 좁은 병실의 한 귀퉁이에 도막난 나무둥치처럼 눕는다
금간 유리창 너머로,
제 몸을 칭칭 감은 깃발이 비틀거리고
환자를 실은 자동차의 행렬이 섰다가 떠나는 모습이 보인다
고층빌딩에 좁아진 도로가
가끔씩 협심증을 일으키며 병원입구로 들어온다
늘어나는 자동차에 가위눌리듯
식은땀을 흘리며


2.
멀쩡한 사람들이 사가는, 병원 입구의 꽃집이
오늘은 문을 닫았다
물 뿌리면 싱싱해야 할 화초들
흐린 햇살이 다가갈수록 입을 굳게 다문다
누군가 묶어 둔 안개꽃과 장미가
시든 채 벽에 걸려 있는 꽃집을 지나오면서,
우리의 미래가 그 곳에 참담하게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감상]
사람에게 있어 병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시는 환자와 일상인과의 미묘한 심리적 간극을 잔잔한 서정과 함께 풀어놓습니다. 특히 '멀쩡한 사람들이 사가는, 병원 입구의 꽃집'은 생경한 이 생의 삶을 깨닫게 하고요. 제목에서 오는 아련한 분위기가 좋은 시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71 문을 닫다 - 문성해 2007.08.28 23678 98
1170 장미 - 박설희 2009.03.09 1737 98
1169 꽃눈이 번져 - 고영민 2009.02.28 1240 99
1168 밤의 편의점 - 권지숙 2011.01.20 1077 99
1167 루드베키아 - 천외자 [1] file 2007.09.07 1162 100
1166 겨울나무 - 이기선 [1] 2008.09.11 1739 100
1165 풀잎처럼 - 박완호 2009.02.14 1270 101
1164 강 건너 불빛 - 이덕규 2009.03.02 1107 101
1163 누군가 눈을 감았다 뜬다 - 황동규 2007.09.14 1405 102
1162 뢴트겐의 정원 - 권오영 [1] 2008.09.16 1200 103
1161 무가지 - 문정영 2011.01.18 924 103
1160 바닷가 저녁빛 - 박형준 2009.03.03 1317 104
1159 주름 - 배영옥 [1] 2007.08.30 1260 105
1158 사랑의 물리학 - 박후기 [1] 2009.11.05 937 105
1157 눈의 여왕 - 진은영 2010.01.13 1042 105
1156 보고 싶은 친구에게 - 신해욱 [1] 2007.09.19 1608 106
1155 사라진 도서관 - 강기원 2010.01.21 1011 106
1154 소주 - 윤진화 2010.01.14 1215 107
1153 빗방울 꽃 - 문신 2009.02.09 1155 108
1152 본인은 죽었으므로 우편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 김기택 2009.03.13 1231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