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에 대한 명상/ 장정일/ 민음사
벽돌이 올라가다
우리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동네어귀의 빈터를 이야기했나
양지바른 그 땅이 푸줏간 남씨의 소유라고
혹은 소문난 바람둥이 곽씨의 땅일 것이라고
지난 봄과 여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소문을
그곳에 세웠지. 술주정꾼은 맥주홀을
병든 자들은 자혜 병원을 세우는 식으로
그런데 저자들은 누구인가.
검은 양피의 두터운 책을 받쳐들고
둥그러니 둘러선 채...감사...은총...돌보심을
뇌까리는 저들은?
죄 많은 동네에 하나님이 집을 짓는다
찬송 없이 여태껏 잘 살아온 이 마을에
주의 충실한 종들이 몰려와 성당을 짓는다.
간단한 시축미사가 끝나고
인부들이 땅을 파기 시작한다. 그런데 저들은
하나님을 지하실에 묻으려는군
구경꾼 몰래 지구가 익혀 놓은 금을 캐려는 듯
인부들은 며칠내 땅을 파내려 가고
기초를 놓는다는 말인가
하나님도 자기집을 땅 위에 굳건히 세워 놓기 위해서는
쌓기 전에 먼저 깊이 파야 한다는 것인가?
주의 종들이, 그지없이 선량한 천국의 백성들이
죄 많은 동네에 성당을 짓는다.
적벽들의 환한 이마에 시커먼 양회를 발라
한 칸 한 칸 신의 별장을 쌓아올린다.
마치 쥬스를 마시는 것처럼
정말 저 높은 곳에 어떤 자가 있어 스트롱을 꽂고
벽돌을 빨아올리는 것일까. 돌아보기도 무섭게
성당은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고
저녁이면 그 길고 무거운 그림자가
입맞춤 청하듯이 이방인의 창문까지 늘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높이 솟구쳤는가
모든 눈썹의 높이를 범람한 붉은 벽돌은
올라가고 올라갔다.
혹 저놈 혼자 신을 만나고 있지나 않을까.
꿈속에도 깨어나 몰래 창문을 열면
그렇기나 한 듯 은은한 구름이 미완의 종루를 감추고
정오마다 새로운 벽돌이 짧은 발꿈치를 들었다.
벽돌이 올라간다, 벽돌이!
높아지는 종루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이
비천한 마을에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서는 줄 알았지만
그 높이 멈춘 쯤해서 십자가 하나 눌러앉을 뿐
쏟아지는 햇살 가운데 하얀 십자가 하나
오롯이 세워질 때 나는 생각했다.
신은 하늘에 있고 벽돌이 아무리 높아진들
육체는 지상에서 견디는 것
우리 마음이 성당으로 가든, 불당으로 향하든
굴리는 대로 구르는 흔들바위를 숭배하든
필시 믿음이란 것도 쌓고 쌓아
마지막엔 자기 가슴속에 한 줌 소금을
남기는 일일 것이라고
[감상]
한때 장정일은 '여호와 증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의 부정적인 면이 조금은 실랄하군요. 하늘에서 어떤 자가 벽돌을 스트롱으로 빨아 들인다가 신선합니다. 장정일은 중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음에도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었습니다. 그 인터뷰에서 이런 말이 생각나는군요. 왜 시를 쓰냐는 말에 "시간 때우기다. 그러나 나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쓴다."라고요. 그래서 그는 소설로 영화로 흘러갔던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