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김충규 / 다층시인선 15
그 숲엔 무수한 뼈가 있다
머리칼 서로 엉켜 햇볕을 허락하지 않는 나무들 하체가 희고 늘 축축하게 젖어 있다
곰팡이가 나무들의 음부 속에서 제 일생을 꽃피우고 있다 숲 속을 서성거리다 끝내 길
못 찾고 스러져 간 자들의 뼈가 낙엽들 위를 뒹굴고 있다 썩지 않는 뼈들이 낮 밤 없이
인광(燐光)처럼 반짝거린다 언제였던가 숲 속에 들어갔다가 헤맨 적이 있었다 내 뼈를
하나씩 뽑아내어 던졌다 반짝이는 내 뼈를 딛고 숲을 나온 적이 있었다 몸 속의 뼈를
버리고서야 비로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숲은 낮 밤 없이 무수한 뼈들 중에서 제 뼈를
찾으려는 자들로 시끄럽다 뼈 없는 내 몸이 잔바람에도 휘어질 때 나는 내 뼈를 찾으려
숲 속으로 들어간다 길을 잃을까 두렵다 더 이상 뽑아낼 뼈가 없다
[감상]
사람이 죽으면 숲으로가 묻습니다. 우주 어딘가에 알처럼 둥근 환생을 꿈꾸듯 봉분이 생깁니다. 이 시는 "뼈"에 대한 상상력이 치열합니다. 어쩌면 많은 영혼들이 봉분이 되어 다른 세상으로 사라졌듯이,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제 뼈를 찾으려는 자들로 시끄"러울지 모릅니다. 나무들마다 바람으로 깃든 소리가 들릴지 모릅니다. 결국 실존實存은 숲으로가 나를 찾는 행위입니다. 숲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 일생을 탕진할 뼈를 되돌아 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