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이복희 / 문학마을
온라인
나는 오늘 사랑을 무통장으로 입금시켰다.
온라인으로 전산 처리되는 나의 사랑은
몇 자리의 숫자로 너의 통장에 찍힐 것이다.
오늘 날짜는 생략하기로 하자.
의뢰인이 나였고, 수취인이 너였다는 사실만 기억했으면 한다.
통장에 사랑이 무수히 송금되면
너는 전국 어디서나 필요한 만큼 인출하여 유용할 수 있고
너의 비밀 구좌에 다만 사랑을 적립하고
이 세상 어디에서도 우리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서는 사랑하지 말자.
오늘도 나는 은행으로 들어간다.
무통장 입금증에 네 영혼의 계좌번호를 적어 넣고
내가 가진 얼마간의 사랑을 송금시킨다.
[감상]
은행의 무통장 입금을 '사랑'으로 환치시키는 직관이 시적 응시입니다. 사랑이 영혼끼리 주고받는 그 무엇이라면, 그 수단을 '무통장입금'으로 포착해낸 점이 흥미롭습니다. 관계란 그런 것일 것입니다. 공수표를 남발하는 것도 아니고, 준 게 있으니 받아내야겠다는 것도 아니겠지요. 마음 통장에 적립된 것이 많아서 우리는 더욱 든든한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