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검은피/ 세계사/ 허연
날아가세요
-悲歌
어머니神, 바보 같으神
이 길의 끝에 서 계신 어머니, 돌아올 차비도 없이 가
서 드릴 마땅한 희망도 없이 당신에게 갔었지요. 전 실패
했어요 어머니 아세요. 해바라기밭 사이 절룩이며 절 마
중 나오지 마세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고 하셨
지요. 평생 시들기만 하는 꽃을 피우시다 이젠 그 자갈밭
에 눈물만 주고 계시는 어머니 그만 일어나세요. 개발제
한구역 표지판 넘어, 방음벽 넘어 멀리멀리 날아가세요
어머니.
어깨를 잃은 사람들이 흰 새벽을 걸어가는 게 보여요.
방죽 위를 지나 모두 고향으로 가고 있어요 어머니.
[감상]
슬프고 아름다운 詩입니다. 고향에 대한 아련한 느낌과 아울러 어머니께 전하는 처연한 어조가 읽힙니다. 보여드릴게 없는 희망, 실패했다는 화자의 발언,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중 나오시는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 나비처럼 날아가라는 말…….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지켜보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참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이 시가 더욱 마음에 드는 것은 마지막 연에 있습니다. 그래도 어깨를 잃은 사람들이 향하는 곳, 그것은 시적 모티브로서 고향을 재현시키는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같이 비 오는 날이었습니다. 이 시집을 읽다가 눈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자꾸만 눈물을 솟으려 했던 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