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자》/ 김언 (1998년 『시와 사상』으로 등단) / 《민음의 시》155
만남
당신은 초초하게 기다린다
나는 당신을 만나러 가지만
한쪽 발이 어디로 걷는지 알 수 없다
한쪽 손이 누구를 반기는지 당신은 알고 있는가
누군가의 어깨를 건드리고 또 건드리며
나의 발은 제 세계를 뚜벅뚜벅 걸어간다
저 발이 몹시도 생소해 보인다면
나의 걸음을 보라, 무릎 아래가 완전히 생략된
이 걸음의 최종 목적지는 당신의 집인가
그 너머인가
한 사람의 손이 기다리고 있다
초인종을 누르는 동안 황급히 뛰어나가는
당신의 발놀림이 있다
문을 열고
우리는 등 뒤에서 서로를 껴안는다
바로 앞에서 당신의 머나먼 소리가 들렸다
어깨 너머로 나의 발이 이제 겨우 도착했다
쉴 새 없이 옷을 벗기고
너무 좁은 세계의 손과 발이 모처럼 쉬고 있다
다른 침대에 누워
[감상]
가상이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세계. 지금 우리가 아바타처럼 존재하는 거라면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이 시를 읽어보면 그러한 의식의 복제, 원본조차 사라져버린 현실의 분열을 상상케 합니다. 몸의 일부인 나의 팔 다리가 각각 따로 행로를 갖는 것은 현대의 을씨년스러운 이미지입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공간이 분할되고, 결핍된 의문만 공허하게 울릴 뿐입니다. 그러니 만나려는 사람조차 얼굴을 모른 채 ‘우리는 등 뒤에서 서로를 껴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의미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다만 수단들만 복제되는 이 시대의 쓸쓸한 풍경. 방문을 닫고 앉아 ‘너무 좁은 세계’같은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당신과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