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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 정병근

2010.12.31 16:27

윤성택 조회 수:756 추천:81


《태양의 족보》/  정병근 (1988년 『불교문학』으로 등단) / 《세계사 시인선》146

         근황

        비가 오는 날은 우산이 없었다
        잃어버리기 위해 라이터를 샀다
        그 많은 볼펜은 다 어디로 갔는지
        겨울은 아는데 여름은 모른다고 했다
        카페 봄에 가서 가을을 물었다
        전화는 선택적으로 묵살되었고
        간판들이 일부일처를 비웃으며 지나갔다
        뒤따라 온 자책과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부재를 알리는 약속이 도착했다
        나를 베어 문 그의 웃음이 재빨리
        영정 사진 속으로 들어갔다
        흩어지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진동이나 문자는 종종 그들의 명분이 되었다
        나보다 더 많이 나를 아는 너와
        너보다 더 많이 너를 아는 내가
        불행한 풍자에 몰두하는 동안
        등 돌린 말들이 서로를 누설했다
        흥건한 흉몽의 문을 두드리며
        나라는 소문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감상]
요즘 근황이 어떠십니까? 누군가 물어온다면 이 시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사실 요즈음의 상황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비는 느닷없이 내리고, 라이터를 매번 어딘가에 놓고 오고, 생활에 바빠 옷차림은 항상 계절에 뒤처지고, 전화를 걸면 일부러 안 받아주는 친구도 있고, 누군가는 죽고, 또 누군가는 나를 나보다 더 아는 듯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이 모든 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근황들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문장의 호응으로 시적 신선함을 더해주는 것도 이 시의 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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