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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리지 - 박소원

2011.01.07 10:03

윤성택 조회 수:939 추천:112

《슬픔만큼 따뜻한 기억이 있을까》/  박소원 (2004년 『문학·선』으로 등단) / 《문학의전당·시인선》98

          연리지

        아무 소리도 깃들지 않는 적막한 나무에게
        나는 오래된 연인처럼 기대고 서서
        가만히 귀를 대었다 멀리서
        보답하듯, 어떤 소리들이 건너왔다
        내 귓속에 싱싱한 소리를 누가 전송하는가
        뿌리의 간격을 치밀하게 밀어부친다
        허공을 뚫어 가는 우듬지를
        어둑어둑 두꺼운 나이테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의 수액이 닿는 푸른 몇 초,
        밑으로만 흐르던 섬뜩한 고요가
        허공의 임파선을 따라 솟구치듯 번져간다
        드러난 내 뿌리 위에 스러지는 그림자가
        그의 밑둥에 걸려서 조금씩 굵어지고
        뚝뚝 이파리들 물 빠지는 소리
        벌써 토막토막 관절 앓는 소리가
        부고처럼 나풀거리며 허공과 허공을 건너간다
        푸른 물이 드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나절 가웃 달빛이 놀다가는 소리가
        봇물처럼 밀려와 내 발톱 끝까지 돌고 있다
        허공의 소리에 온몸을 푸르게 바치고 싶구나

        
[감상]
연리지란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나무처럼 자라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시는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화자인 나와 나무와의 ‘엉김’을 청각적으로 풀어냅니다. 마치 나무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생생한 묘사들이 유려한 문체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할까요. 시인에게만 들리는 이 소리들은 기실 문학적 감수성에서 기인된 것일 것입니다. 나무와 소통을 이루는 이 대자연의 메아리가 여전히 곳곳에 흩어지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귀를 막고 마음을 닫고 여태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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