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허수경/ 창작과비평사, 2001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아이들은 장갑차를 타고 국경을 지나 천막 수용소로 들
어가고 할미는 손자의 손을 잡고 노천 화장실로 들어간다
할미의 엉덩이를 빛은 어루만진다 죽은 아들을 낳을 때처
럼 할미는 몽롱해지고 손자는 문 바깥에 서 있다 빛 너머로
바람이 일어난다
늙은 가수는 자선공연을 열고 무대에서 하모니카를 부른
다 둥근 나귀의 눈망울 같은 아이의 영혼은 하모니카 위로
날아다닌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빛 속으로 들어간 것
처럼 아이의 영혼에 엉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기다리는
영혼처럼 헝덩거리며 하모니카의 빠각이는 이빨에 실핏줄
을 끼워 넣는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장갑차에 아이들의 썩어가는 시
체를 싣고 가는 군인의 나날에도 춤을 춘다 그러니까 내 영
혼은 내 것이고 아이의 것이고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감상]
어느 작고 얼굴이 까만 여인이
줄담배를 피우며 킥킥거린다.
당신……, 당신이라는 말 좋지요. 그래서 불러 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마치 강렬한 색이 꺼칠꺼칠 만져질 것 같은 유화油畵 같은 시편,
52개의 그림을 몇 점씩 마을버스에 걸어 놓았다가,
사무실 책상에 걸어 놓았다가,
5호선 지하철 안에 걸어 놓았다가.
葉書 한 장 띄우고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