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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의 무늬 - 박후기

2004.07.16 11:55

윤성택 조회 수:2160 추천:223

「내 가슴의 무늬」/ 박후기/ 《작가세계》2003년 여름호

        
        내 가슴의 무늬
        
        비가 그치자    
        나무들은 있는 힘껏 잎을 부풀렸다  
        성긴 나무의 뿌리는  
        부활절 사제의 분주한 발길처럼  
        햇빛의 설교를 땅 속에 퍼뜨렸으며
        바람 앞에서 잎들은 성호를 그었다
        죽은 잎은 쉽게 떨켜를 놓아버렸지만
        죽은 형의 애인은 끝까지 죽은 형의  
        관짝에 매달렸다 땅바닥에 뒹굴었다  
        
        스무 살 여린 내 눈물이
        군용 소보루빵의 푸른곰팡이로 피어났고
        숨죽인 초소 뒤편
        발목까지 바지를 풀러 내린 풀들의 수음이  
        은밀했다 바람에 뒤집혀 반짝이는  
        은사시나무 잎사귀들, 그토록  
        수많은 충고를 담아두기에 내 귀는
        너무 천박했다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저 혼자 튀겨나가는  
        폐타이어 화단의 봉숭아씨
        나도 팍, 터지고 싶었다 그러나  
        터진 열매 껍질처럼 빈주먹 말아 쥔 채로
        이리저리 얻어터지며 원위치 하던 나는  
        후두둑 후두둑 후박나무 잎사귀  
        비 맞는 소리 눈물겹던 그 여름의
        나무 밑을 잊지 못했다    
        
        십일월은 쌀쌀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쓸쓸하게 널브러진 갈색의 잎들
        오그라들고 한때 부풀었던
        그 많은 시간들  
        더는 뒤돌아볼 수 없음이여
        
        나무들
        딱딱한 가슴 속  
        섬세한 울림으로 새겨지는
        둥그런 생의 기록    
        아, 무엇을 쓸 것인가  
        얼룩진 무늬들, 덧없는
        

[감상]
젊은 날 방황과 고뇌, 그리고 섬세하게 수놓아진 수사가 인상적인 시입니다. 누구나 다 청춘의 '무늬'를 떠올려보게 될 것 같고요.
옛날 명동 가운데에는 국립극장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돌체ㆍ갈채다방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항상 문인들이 있었고 그게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어서 대중문화의 저잣거리에서 詩를 돌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요즘 제 또래를 보기 어려워 다시 50년대 명동으로 돌아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詩행사에 몇몇 안 되는 비슷한 연배의 시인은 가족만 같습니다. 그들 중에서 박후기 시인을 보게 된 것은 적잖은 기쁨입니다. 그의 당선소감을 발췌해 옮겨 놓습니다. 역시 철봉은 힘이 셉니다.

        
*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며 걸었던 모든 길들은 막장이었다. 일곱 살 어린 내가 아직 젊은 엄마 치맛단을 부여잡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던 둔포장 논둑길이나, 열아홉 살 목발에 몸을 실은 내가 절룩거리며 술 취한 채 걷던 객사리의 밤길도, 죄진 스무 살 몸은 야위고 이스트를 넣은 빵처럼 꿈만 부풀었던 시절에 걷던 명동길, 길게 뻗은 철책선, 정신없이 얻어터지며 원위치하던, 크레모아 폭약처럼 팍 터져버리고 싶던 스물네 살 숨죽인 이등병의 눈 앞에 펼쳐진 길도, 수채 물감이 물 위에서 몸을 풀 듯 각혈로 꽃을 피우며 누가 볼까 두려워 한밤중에야 남몰래 나가 걷던 도두리의 밤길도. 그러나 내가 걸어온 모든 길들은 결국 내가 가지 않으면 안될 길이었다. 돌아보면, 여러 갈래의 길이 보이기도 했지만, 막막한 지층을 파내고 더욱 어두운 지하로 파들어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현실 앞에서는 눈 앞에 하나의 길밖에 보이지 않았으므로.

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유년시절 내 발목을 삼켜버린, 인분을 쏟아부은 밭두렁의 거름구덩이처럼. 어느 해 겨울, 늦은 밤, 여물지 못한 내가 시화전을 열던 평택 읍내 카페에 눈사람이 되어 찾아오신 아버지. 시 쓰면 배고플 텐데, 하지만 아무것도 부러워할 것은 없다, 넌 그저 공부나 열심히 해라. 아버지, 앞니를 모두 잃어버린, 헛바람 들락날락거리는 모너진 세월의 대문짝. 그날 밤, 아버지 먼저 죽은 아들의 이름을 조심스레 되뇌며 노래를 불렀다. 중국집 둥근 요리 탁자에 둘러앉아 고량주를 마시며 듣던, 이 세상에서 부르는 아버지의 마지막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 나는 천둥산 박달재를 한번도 가보진 않았지만, 지금도 가끔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다.

도두리, 아직 살아 계신 아버지 지친 어깨 이끌고 말랭이 고개를 넘어 오신다. 개들은 목쉰 소리로 짖어대고 도장산 모퉁이 미루나무 등걸에 아버지 그림자 잠시 걸터앉았다, 일어선다. 얼마 전, 고향 집엘 가다가 길 위에서 발견한 낯익은 흔적 하나. 오래 전, 미군부대에서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발자국이었다. 집 앞 시멘트 포장 길에 널찍하게 찍한 화석 같은 작업화 자국을 보면서 생의 궤적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여기 지구 위에 잠시 머물다 가다>라는, 그의 한 생이 담긴 묘비명과도 같은.

지구는 1초에 30킬로미터를 흘러간다. 계산기를 꾹꾹 눌러보니, 지구가 하루에 움직이는 거리는 대략 2,592,000킬로미터, 권태에 지쳐 잠시 넋을 놓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지금껏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을 지나 지구와 함께 어디론가 까마득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구의 노정을 생각한다면,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벼 파는 일일지라도 끊임없이 움직여야 되는 것 아닌가? 시를 쓰는 일도, 이처럼 별것 아닌 일에 사명감을 부여하는 일은 아닐까. <밥 굶지 말고 다녀라>, 담이 목에 잔뜩 걸린 어머니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그렁거린다. 중요한 것은, 다만, 계획 없는 여행에서 얻어지는 작은 기쁨과, 겨우 세 식구 편히 누울 수 있는 구유 같은 집안의 평안은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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