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UFO> / 박선경/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안녕, UFO
비가 온다 시작도 알 수 없이 대기의 틈새로 흘러가는 빗줄기의 한 부분을
나는 달리고 있다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빗방울 저 끝에서 열기를 잃은 쓸쓸
한 빛의 입자들이 눈부시게 반짝, 그러나 나는 이미 흘러가고 없다 끝없이
하강 중이던 너는 어디로 갔을까 우린 서로의 신호를 알아보지 못하고 쓸쓸
히 떠나버린 우주선, 잠시 마주친 서로의 이미지를 통과하는 중
빗방울 눈부신 은빛으로 오네 손을 흔들며 멈춰 서있네 작은 행성처럼 내
안에 있던 너의 이름들이 역류하네 일만 광년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별의 폭
발, 눈부신 파편들이 저마다 홀로 타오르며 사라져가네 나는 온 힘을 다해
말하네 네가 가고 있는 그곳에 나 좀 데려다줄래
나는 공중에 머무네
[감상]
하늘을 3초 이상 바라본 적이 언제였을까, 낭만이라는 이름을 빌려서라도 저 비를 올려다볼 수 있었을 텐데. 이 시를 읽고 나니 <빗방울>에 대한 존재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이 시의 은빛 미확인비행물체 UFO란 <빗줄기의 한 부분>으로 지상으로 내려오는 빗방울 우주선입니다. 비구름 아래 한 방울 한 방울 이 우주선들이 <서로의 신호를 알아보지 못하고 쓸쓸히> 파문으로 추락합니다. 대기의 순환이 그러하듯 빗방울은 인류가 있기 오래전 먼 우주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묘사나 은유를 넘어선 <네가 가고 있는 그곳에 나 좀 데려다줄래>라는 표현이 더더욱 아련한 빗속을 여행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