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흔들리며 살고 싶다》 / 구재기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 《시작시인선》0112
사랑은 매일 걷는 길가에 있다
그냥 걷는 길가에서
하늘을 본다
움푹 파인 곳마다
물은 깊은 호수로 고이고
그 속에 하늘이 내려와 있음을 본다
매일매일 하늘을 굽어보면서
길을 걸어가면서
아무리 굽어보아도
높은 하늘인 것을
그 깊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대여, 사랑은 그렇게
매일 걷는 나의 길가에 있다
소나기가 지나간 자리를 보듬어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먼저 와 있다
[감상]
매번 가던 길인데도 낯설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거나, 이미 본 것이라도 관심이 가게 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쉽게 지나치고 쉽게 잊어버리는 건, 일순간 밀려오는 정보들로부터 과부하가 걸린 것은 아닌지요. 이 시는 이러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휴식과 산책의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자유롭게 그리고 천천히, 길을 걷는 것. 거기에 새로움이 있고 설렘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먼저 와’ 기다리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