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자세』 / 이정화 (200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 《종려나무》시인선 26
어느 행성에 관한 기록
돌아오지 않는 것들은 다 이유가 있다
누군가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 물어온다면
나는 먼저 보내야만 했던 이유를 말해주겠다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돌아오고야 마는 것들이 남긴
한 편의 우화를 들려주겠다
# 편지-쓰다만
하나의 별은 우주의 전부
한때 별이었던 나는
거쳐 온 자리마다 떨궈야 했던
빛의 정처로 떠난다
# 편지-어두운
어두울수록 물상들은 선명해지고
어두울수록 대화는 다정해져
밤이면 등잔의 심지를 낮추고 정성스레
별빛을 닦아 왔으나 그럴수록
결핍을 기록해 놓은 심장의 빗금은
가파르게 떠올라 산정을 오른다
# 편지-다시 쓰는
지상에 묻힐 수 없는 것들이 별이 된다고 한다
이승에서 닿을 수 없는 움직임들이 별빛이 된다고 한다
저리게 담궈둔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날아오는
이것은 기다림의 한 형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날마다 떠나고 날마다 돌아옴으로써
스스로 빛을 내는 행성,
돌아오지 않는 것들은 모두 내 안에 있다
오늘도 별 하나를 내다 걸었다 총총.
[감상]
‘별’을 생각하면 어쩐지 아련함이 앞섭니다. 뭐랄까 존재에 대한 발생적 근원이나 그 기원의 상징성 같은 걸까요. 이 시는 이러한 의미들을 아우르면서 우화의 형식으로, 또 이야기의 형식으로 들려줍니다. 만남과 이별, 편지, 대화 등을 통해 어렴풋한 연애의 설렘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두울수록 대화는 다정해’지는 것이나 ‘돌아오지 않는 것들은 모두 내 안에 있다’는 문장이 그윽합니다. 행여 이러한 경구들이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을까 싶어서 첫 연과 마지막 연을 구술하듯 배치해 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누구에게나 이렇게 가슴 속 뜨는 별이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