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눈의 여왕 - 진은영

2010.01.13 18:07

윤성택 조회 수:1041 추천:105

  《우리는 매일매일》/ 진은영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351

        눈의 여왕

        그녀에게서 훔쳐온 것은
        모두에게 어울린다
        사물들은 하얀 곰가죽을 덮어쓴다
        부푼 보리씨가 자라고
        청소용 트럭, 빨간 우체통 그리고 떠다니는 집들

        자동차는 멈춰 있고
        폐타이어들이 굴러다닌다, 내 애인의
        유두처럼 까맣다

        그런 아침 사람들은
        칼날처럼 일찍 일어나
        피 묻은 자줏빛 살덩이의 살해자를
        찾으러 다닌다

        바람에 묶인 흰 털들이 공중으로 도망친다

          
[감상]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저녁입니다. 모든 사물들은 높고 낮음이 없이 엎드려 그 흰 기별을 기다리는 것만 같습니다. 공평하게 그리고 고요하게 눈은 모두에게 어울릴만한 외피를 지녔습니다. 눈의 여왕이 저기압의 구름에 있다면, 겨울은 끝없이 지상으로 눈을 훔쳐내는 운명을 어쩔 수 없습니다. 눈 속에서 자기 색을 유지하기 위해 오롯이 버티는 빨간 우체통, 혹은 아침 출근길 쌓인 눈을 날리며 달리는 자동차들의 바퀴. 사람들은 자줏빛 입술을 한 채 거리에 내몰리고. 하얀 곰가죽을 덮어쓴 날들이 내일쯤 모레쯤, 어느 갓길에서 발견되겠지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 눈의 여왕 - 진은영 2010.01.13 1041 105
1130 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 신해욱 2010.01.12 1282 109
1129 동사자 - 송찬호 2010.01.09 1030 118
1128 음악 - 강성은 2010.01.07 1171 133
1127 합체 - 안현미 2010.01.06 1029 146
1126 2010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2010.01.05 1349 138
1125 단단해지는 법 - 윤석정 2010.01.04 1251 132
1124 겨울의 이마 - 하정임 2009.12.18 1189 127
1123 어느 행성에 관한 기록 - 이정화 2009.12.16 929 125
1122 자폐, 고요하고 고요한 - 최을원 2009.12.15 949 129
1121 붉은 염전 - 김평엽 2009.12.10 954 131
1120 못을 박다가 - 신현복 2009.12.07 1003 112
1119 연두의 시제 - 김경주 [1] 2009.12.02 1084 119
1118 고백 - 남진우 2009.11.27 1144 131
1117 오늘은 행복하다 - 김후란 2009.11.26 1282 118
1116 사랑은 매일 걷는 길가에 있다 - 구재기 2009.11.24 1304 122
1115 야생사과 - 나희덕 2009.11.23 1066 124
1114 추상 - 한석호 2009.11.21 855 119
1113 대설 - 정양 2009.11.19 905 109
1112 나무 안에 누가 있다 - 양해기 2009.11.18 905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