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눈의 여왕 - 진은영

2010.01.13 18:07

윤성택 조회 수:1042 추천:105

  《우리는 매일매일》/ 진은영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351

        눈의 여왕

        그녀에게서 훔쳐온 것은
        모두에게 어울린다
        사물들은 하얀 곰가죽을 덮어쓴다
        부푼 보리씨가 자라고
        청소용 트럭, 빨간 우체통 그리고 떠다니는 집들

        자동차는 멈춰 있고
        폐타이어들이 굴러다닌다, 내 애인의
        유두처럼 까맣다

        그런 아침 사람들은
        칼날처럼 일찍 일어나
        피 묻은 자줏빛 살덩이의 살해자를
        찾으러 다닌다

        바람에 묶인 흰 털들이 공중으로 도망친다

          
[감상]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저녁입니다. 모든 사물들은 높고 낮음이 없이 엎드려 그 흰 기별을 기다리는 것만 같습니다. 공평하게 그리고 고요하게 눈은 모두에게 어울릴만한 외피를 지녔습니다. 눈의 여왕이 저기압의 구름에 있다면, 겨울은 끝없이 지상으로 눈을 훔쳐내는 운명을 어쩔 수 없습니다. 눈 속에서 자기 색을 유지하기 위해 오롯이 버티는 빨간 우체통, 혹은 아침 출근길 쌓인 눈을 날리며 달리는 자동차들의 바퀴. 사람들은 자줏빛 입술을 한 채 거리에 내몰리고. 하얀 곰가죽을 덮어쓴 날들이 내일쯤 모레쯤, 어느 갓길에서 발견되겠지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31 소음동 삽화 - 서광일 2001.05.18 1290 277
1130 봄비 - 서영처 2006.01.14 3275 276
1129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2001.06.21 1636 276
1128 이름 모를 여자에게 바치는 편지 - 니카노르 파라 [1] 2001.06.07 1460 275
1127 사랑한다는 것 - 안도현 2001.07.02 1970 274
1126 세월의 변명 - 조숙향 [1] 2001.04.09 2476 273
1125 色 - 박경희 [1] 2005.07.28 1693 272
1124 목재소에서 - 박미란 2001.06.08 1234 272
1123 편지 - 이성복 2001.08.09 2481 271
1122 2006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1] 2006.01.02 2454 270
1121 바구니 - 송찬호 2001.05.07 1404 270
1120 내 안의 골목길 - 위승희 [2] 2001.07.03 1517 269
1119 기억에 대하여 - 이대흠 2001.05.28 1565 269
1118 서른 부근 - 이은림 2001.05.24 1540 269
1117 푸른 밤 - 나희덕 [1] 2001.07.27 1900 268
1116 내 품에, 그대 눈물을 - 이정록 2001.06.22 1488 268
1115 부드러운 감옥 - 이경임 2001.05.31 1397 268
1114 안녕, UFO - 박선경 2006.05.25 1859 267
1113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 2001.06.12 1618 267
1112 발령났다 - 김연성 2006.06.27 1662 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