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 안시아/ 《창작과비평》2005년 여름호
그림자
뜨거운 한낮은 햇빛 가마터다
달궈진 태양이 먹빛으로 빚어지는 오후
그림자가 뚜벅뚜벅 골목을 가고 있다
태양은 제 몸을 달궈 가장 어두운
그늘 하나씩 만들어주는 셈,
뜨거운 최후까지 검은 빛으로
반대편을 반사한다
태양을 향한 직립이 담벼락 그림자를 휜다
길 한 켠 나무 아래로
두 개의 그림자가 교차해간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서로에게
그늘의 경계를 지워 가는 것
바람이 햇살에 담갔다 올린 나뭇잎이
유약을 입은 듯 반짝이고 있다
담벼락에 그림자 문양이 하나 둘 스치고
발걸음은 물레처럼 골목을 회전시킨다
뜨겁게 재벌구이 되는 오후가 지나면
가로등이 높은 곳에서 몸을 데우며
둥근 저녁을 빚어놓을 것이다
세상의 굴곡은 거대한 도공의 손길이다
[감상]
골목길 길게 이어지는 담에 손끝을 대고 걷다보면 블록과 블록 홈을 따라 이어지는 감촉. 이 시는 그런 골목길의 풍경을 회전판 위의 도자기로 비유해냅니다. 거기에 태양이라든가, 그림자, 햇살이 도자기를 완성시키기 위한 재료로 재탄생됩니다. 이렇듯 시의 발아지점은 상식을 뒤집는 발상전환에 있습니다. <뜨거운 한낮> 가마터인 담벼락에 새겨 넣어지고 있는 시인만의 도자기 무늬, 그 고즈넉한 여름이 떠올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