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느낌」/ 서지월/ 『미네르바』2003년 봄호
쓸쓸한 느낌
산그늘이 깔리듯
때로는 쓸쓸할 때가 있다
길을 가다가 마주친 풀꽃 한 송이에
눈을 주고
돌아선 발걸음처럼
하나의 단추가 풀어질 때가 있다
너와 내가 붉은 보도블록 위를 걸어가거나
라일락꽃 핀 장독대가 있는 집 골목을
돌아나오거나
두 갈림길의 거적 위에 서서
굳바이 하며 비껴가는 새가 될지라도
거기 누워 있는 누워 있는 잔돌처럼
세상이 접혀진 종이학 같을 때가 있다
[감상]
이 시는 인연을 들여다보는 철학적 사유가 좋습니다. 사람이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 어쩌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웅크린 태아이기 이전, 먼먼 우주의 빛에서부터 예정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하여 인연이란 '종이학'처럼 우주의 질서에 의해 접혀진 반듯한 것이어서 한켠 쓸쓸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붉은 보도블록'이나 '라일락꽃 핀 장독대'는 함께 했던 존재를 살려내는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기억인 것입니다. 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을 거부하지 않는 것이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억은 과거를 되살려 내는 쓸쓸한 용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나의 단추가 풀어질 때'처럼 아무도 모르게 다가오는 운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