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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를 듣다 - 장만호

2003.02.10 13:36

윤성택 조회 수:1179 추천:150

「바람소리를 듣다」/ 장만호/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바람소리를 듣다


   아버지는 늙어갈수록 더 깊은 강으로 나갔다 늙은 아버지의 삿대가
비단을 자르듯 저녁의 저 강, 저 저녁의 강으로 나아갈 때 아버지,  자
라 한 마리만 잡아다 주세요 푸른 자라를 키우고 싶어요 그물을  펼치
는 거미를 보면서 나는 자꾸 무언가를 키우고  싶었다 할머니의  밭은
기침소리를  들으며 늙은 아버지는  더 먼 강심으로 배를  저어갔지만
아버지의 그물에  걸릴 고기는 없었다  할머니 기침소리가  너무 커요
아가, 속이 비어있는 것들은 이렇게 소리를 낸단다


   바람이 가는 길을 마음이 가네  저녁 한때의 바람을 가르는  대숲에
서 아버지, 늙은  아버지가 살고  아버지 허물을 벗는  봄산의 기슭 아
래서 뼈를 깍듯 갈라진 발굽을 벗겨내는  할머니와 오래 거기  살았네
할머니 자라는 어디를 갔을까요 배 고프지 아가, 소쩍새 소리를  들어
라 그러나 새소리들은 낮고 어두운  집으로 들어와 마당을  떠다닐 뿐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네 푸른  소리들이 머무는 그곳에서  늙은 아버
지, 거기 우리 갑골문처럼 오래 살았네




[감상]
이 시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로 이어지는 회상이 잔잔하게 이어집니다. 이 시가 다른 시인의 시와 다르게 좋은 발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풍경의 소묘에서 그치지 않고 청각을 이용한 이미지의 구체성에 있습니다. 할머니와 아이가 주고받는 대화를 운율감 있게 배치함으로서 '울림'의 감성에 보다 접근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행 '거기 우리 갑골문처럼 오래 살았네'의 기막힌 맺음은 잘 쓴 직유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줍니다. '갑골문처럼'에 이 시의 매력이 단단하게 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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