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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글벨 징글벨, 겨울비는 내리고 - 최금진

2002.12.16 16:38

윤성택 조회 수:1096 추천:172

징글벨 징글벨, 겨울비는 내리고 / 최금진 / 『현대시학』2002년 1월호



        징글벨 징글벨, 겨울비는 내리고



        오색 색동옷을 걸쳐 입은 애드벌룬이 바람을 탄다
        부적처럼 이마에 광고문안을 붙이고 징글징글
        잔뜩 웃음을 부풀리고 있다
        비에 젖은 총신을 세우고 가로수들은 겨울로 행군한다
        검은 비닐봉지는 헛배가 불러 날아가고
        늙은 폐허는 거리에 숨어서 노파를 출산한다
        연말의 호황 속에 셔터를 내린 상가들은 연신 징글징글
        잠의 깊은 참호를 파 내려가
        신호탄처럼 쏘아 올려질 아침을 기다린다 귀순할 데 없는
        늙고 병든 거리의 시민들은 터미널에 진을 친다
        꿈의 네 기둥을 몸 속에 박아 넣고 징글징글
        징글맞은 한 해를 마셔댄다
        도화선에 어떤 불도 당겨지지 않은 세말 또는
        말세에 온 희망을 걸었던 왼손잡이 청년들은
        붉은 혀 널름거리는 네온불빛을 향해 자원하여 떠나고
        드럼통 쌓인 공터에선 흉기보다 무서운 사내들이
        누군가의 꽃잎 같은 몸을 허물며 스며들기도 한다
        비명은 그저 허공에 터지는 공포탄이다 파출소 앞
        가로등으로 어둠은 가출소녀들처럼 모여들고
        넓은 허공을 혼자 다 점령한 오색 애드벌룬이 징글징글
        웃는다 성탄맞이대바겐세일을 거리에 통보하며
        안 보이는 외줄을 타고 춤을 춘다
        다시 한차례 먹구름들의 공습이 시작되는 아침
        제야의 종소리를 앞세운 검은 제복의 구세군들은
        징글징글 고아원과 양로원으로 북을 치며 행진한다



[감상]
성탄절이 가까워 옵니다. 즐겁고 풍요롭고 따뜻한 이 겨울의 상징을, 이 시는 철저하게 남다른 상상력으로 재해석합니다. '징글벨'을 생각만 하여도 징그러울 만큼 흉한 '징글징글'로 표현함으로서, 전쟁의 공포나 음침하고 우울한 시대상을 그려냅니다. 그래서 이 시는 성탄절이 갖는 배면을 들춰냄으로,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깊이 있는 투영이 돋보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또 다시 공습이 시작될 시점이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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