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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에 대한 우울 - 김수우

2002.12.24 10:40

윤성택 조회 수:895 추천:161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 김수우 / 『시와시학』시인선



        뿔에 대한 우울


        연필 깎아 필통 속에 나란히 세우고
        닳은 지우개 하나 넣는다
        내일 모레 글피를 그렇게 준비하던 아홉 살
        쓸 것도 지울 것도 많으리란 걸 알았을까
        연필 끝에서 돋아나던 바람의 이름들

        내 몸 속에 뿔 하나 가지고 싶었는지 몰라
        연필심 뾰족하게 갈던 정갈한 슬픔
        하루에도 몇 번씩 부러지는 연필심
        하루에도 몇 번씩 촉을 세우던
        오롯한 자만은 한 그루 미루나무로 자랐지

        다 어디로 흘러갔을까
        미루나무에 파도치던 꿈의 등비늘들
        쓰레기통 뒤지는 도심의 들고양이처럼
        살아내라 살아내라 살아내라
        손톱만 길어나고, 발톱만 길어나고

        툭, 무릎 위로 떨어지는 이름 하나
        몽당 연필 하나, 잃어버린 뿔 하나




[감상]
어렸을 적 뾰족이 연필을 깎아 넣은 필통을 볼 때마다 왜 그리 든든했던지요. 이 시는 그런 유년의 편린을 섬세하게 풀어놓았습니다. 어쩌면 그 시절부터 써 내려갔던 문장은 아직도 완성이 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연에서 환기되는 잃어버린 추억이 인상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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