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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공중전화 - 김경주

2003.01.04 10:55

윤성택 조회 수:1179 추천:168

꽃 피는 공중전화 / 김경주 /2003년 대한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꽃 피는 공중전화
        


        퇴근한 여공들 다닥다닥 세워 둔
        차디찬 자전거 열쇠 풀고 있다
        창 밖으로 흰쌀 같은 함박눈이 내리면
        야근 중인 가발 공장 여공들은
        틈만 나면 담을 뛰어넘어 공중전화로 달려간다
        수첩 속 눈송이 하나씩 꾹꾹 누른다
        치열齒列이 고르지 못한 이빨일수록 환하게 출렁이고
        조립식 벽 틈으로 스며 들어온 바람
        흐린 백열등 속에도 눈은 수북이 쌓인다
        오래 된 번호의 순들을 툭툭 털어
        수화기에 언 귀를 바짝 갖다 대면
        손톱처럼 앗! 하고 잘려 나 갔던 첫사랑이며
        서랍 속 손수건에 싸둔 어머니의 보청기까지
        수화기를 타고 전해 오는 또박또박한 신호음
        가슴에 고스란히 박혀 들어온다
        작업반장 장씨가 챙챙 골목마다 체인 소리를
        피워 놓고 사라지면 여공들은 흰 면 장갑 벗는다
        시린 손끝에 보푸라기 일어나 있다
        상처가 지나간 자리마다 뿌리내린 실밥들 삐뚤삐뚤하다
        졸린 눈빛이 심다만 수북한 머리칼 위로 뿌옇다
        밤새도록 미싱 아래서 가위, 바위, 보
        순서를 정한 통화 한 송이씩 피었다 진다
        라디오의 잡음이 싱싱하다



[감상]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끊임없이 주제에 맞춰 풀어내는 정감 어린 입담이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신춘문예를 지켜보면서 신춘문예형 詩의 틀이 깨지고 있구나란 느낌이 들더군요. 적당한 포즈와 모호 그리고 평론가를 위한 詩. 어쩌면 그런 詩들로 말미암아 세상과 詩와의 관계가 그간 서먹했는지도 모릅니다. 다시금 문학성과 대중성의 접점을 찾는 자세가 우리 문단의 흐름을 주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詩가 너무 멀리 왔습니다. 여하간 모 사이트에서 이 분의 습작을 봐왔지만 젊은 나이, 참 기대되는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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