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무덤』 / 김언 / 『천년의 시작』시인선 (신간)
증명사진
내가 찍기도 전에 그는 먼저 움직인다 내가 찍기도 전에
그는 이제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지금은 우리들 중 한
명이 그걸 대신하고 있다
나는 너무 오래 기다렸다
[감상]
초록색 시집을 들춰봅니다. 갈피마다 시들에게서 치열하지 않으면 '생활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목숨을 죽'이는 거라는 말이 맴돕니다. 사각의 틀 안에 잡아넣는 사진. 어떤 서류에 붙이는 사진이었을까요. 이 시는 그 네모란 2.5 x 3cm규격에 가둬야하는 절박함과, 그 사진 밖의 시간이 또 다른 '나'를 만들어냅니다. 결국 현실의 '나'와 사진 속의 '그'가 같은 인물임에도 사진을 찍은 후 각기 다른 삶의 이정으로 이끌려갑니다. 증명사진은 이처럼 어떤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삶의 복선(伏線)이며, 그 사건에 대한 기다림의 몫은 온전히 '나'의 기대치로 남는 것입니다. 짧은 시이지만 너무 오래 기다렸다는 말, 인상적입니다. 그 흔한 주례사 비평도 생략한 이 시집의 순수와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