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 그 푸른 역/ 김왕노/ 1992년 대구 매일신춘문예로 등단
망설임, 그 푸른 역
택시가 서자 택시에서 꽃이 내렸다
꽃은 기차표를 끊어 남쪽으로 떠났다
봄이면 북상해 오리라던 예감도 약속도 없이
버스가 서자 별이 내렸다 낮달이 내렸다
트럭이 서자 가로수가 내렸다
생 잎을 떨구다 가로수도 떠났다
바람이 서자 도시를 부둥켜안고 있던
노래가 내렸다
몇은 떠났지만 몇은 혀끝에 잡아두었다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나를 위한 작은 배려
저녁나절을 무단 횡단해 온 새가 나직이 울어준다
[감상]
가을의 소문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번지지만, 봄의 소문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퍼집니다. 이 시는 그런 푸릇푸릇한 발아의 순간들을 의인화하여 문명과 잇대어 놓습니다. 매번 절감하는 것이지만 상상력이란 얼마나 즐거운가요? 그래서 이제쯤 도착할 때가 되었나, 자꾸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