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 유홍준

2002.06.24 11:25

윤성택 조회 수:1020 추천:162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유홍준/ 『현대시 2002』
    

        喪家에 모인 구두들
            
                   
        저녁 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들이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喪家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패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신고
        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북천(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감상]
상가집 풍경이 선합니다. 시가 좋은 이유는 상가에서 발견하는 "짓밟는 게 삶"이라는 직관의 것입니다. 詩라는 것, 새로울수록 맛이 더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이미 많은 시인들에 의해서 발굴되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시의 것을 찾아 세상에 시선을 투영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시인의 몫이 아닐까요. 그래서 시집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미 채굴된 낡은 표현들을 피하려는 데에도 있을 것입니다. 끝끝내 광부의 소임을 잊지 말면서.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271 목포항 - 김선우 2002.07.22 1222 209
270 월식 - 최금진 2002.07.19 1302 187
269 형상기억합금 - 이혜진 2002.07.16 1098 202
268 페인트공 - 손순미 2002.07.15 1160 172
267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 한혜영 2002.07.12 1058 176
266 봄날 - 신경림 2002.07.11 1629 176
265 구부러진다는 것 - 이정록 2002.07.09 1111 174
264 산수유꽃 - 신용목 2002.07.08 1179 170
263 사슴농장에 대한 추억 - 윤의섭 2002.07.05 1021 187
262 寄生現實(기생현실) - 김중 2002.07.04 1126 215
261 가스관 묻힌 사거리 - 최승철 2002.07.02 1075 186
260 일몰 - 홍길성 2002.06.28 1156 188
259 지금은 꽃피는 중 - 류외향 2002.06.27 1246 179
258 다대포 일몰 - 최영철 2002.06.26 1007 180
257 강풍(强風)에 비 - 김영승 2002.06.25 1062 171
»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 - 유홍준 2002.06.24 1020 162
255 망설임, 그 푸른 역 - 김왕노 2002.06.20 1153 174
254 꽃나무와 남자 - 조정인 2002.06.19 1167 198
253 이장 - 한승태 2002.06.18 1094 226
252 그리움의 거리 - 조재영 2002.06.17 1350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