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꽃피는 중/ 류외향/ 계간 『시작』
지금은 꽃피는 중
꽃 피는 시간은 길고 길었으나,
꽃들의 마음을 알지 못해
전 생애를 걸고 피는 꽃들을,
자궁 밖으로 밀어내는 이 봄의 통증은
달을 헛짚어오는 월경처럼 어지러웠고,
저들이 이 세상의 허공에다 던진
아름답고 슬픈 투망에는
무엇이 건져질는지
발소리 삭인 채 다가와
앞질러 내달려가는 이 봄은
속수무책 피어나는 희망이어서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네
다만 우연이므로
이 봄에 내가 있는 것
그리고 그대를 그리워하는 것
돌아보면
꽃들의 꽃진 자리뿐이었으니,
무엇을 이름하여 부를 수 있을런지
지금은 청량하게 눈 씻는 중
봄이 꽃피는 시간을 말갛게 바라보는 중
그리고 저 만개한 우연처럼 그대
내게 들키지 않으며
오고 가는 중
[감상]
"만개한 우연"의 대목에서 잠시 생각하게 합니다. 어쩌다 이 세상에 우연히 피어났을까. 내가 마음에 원을 세우고 있는 동안, 그 수많은 경우의 수가 내게 다가오는 동안 필연으로 다가오고 있을 것 같은 이 예감. 이 시는 꽃들이 피고 지는 생애를 통찰해내면서 우리의 인연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대가 휘청휘청 시간의 갈대숲을 헤치고 걸어나왔으니, 그 바람에 내 생각이 한쪽으로 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