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는 이제 영영 돼지를 만나지 못한다』/ 김중/ 문학과 지성사
寄生現實(기생현실)
꿈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꿈이란 예언인 동시에, 그
예언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1
난간에 걸터앉아 저 아래를 내려다본다. 화분을 들어 살짝 떨어뜨려
본다. 까마득! 바스러진다. 화초는 벗은 여자처럼 흰 하반신을 드러내고
낮은 바닥에 납작하니 누웠다.
2
내가 움직이면 자꾸 누가 죽어. 걸음마다 남들의 예쁜 정원을 파괴하
네. 고야의 거인처럼, 나는 매우 커졌다. 숨자. 차라리 숨어버리자. 매우
광활한 곳에.
3
거울 속의 나를 만진다. 손가락이 닿자마자, 거울은 조롱하듯 천천히
쪼개진다, 아주 천천히…… 세상 가장 내밀한 곳에 떨어진, 저 정교한
벼락. 스치는 환영들만 뱀처럼 기어 심연을 건널 뿐, 갈라진 내 얼굴은
다시 붙지 않는다. 불길하다. 모든 것이 불길하다.
4
존경하는 선생님과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그가 나를 따뜻하
게 격하고…… 난 감동하여 떨리는 목소리로, "너는 개-새끼야."
5
술에 취하여 여자들의 동공이 재떨이로 보여, 거기에 담배를 끄고 싶
다. 아름다운 여자들의 까만 눈동자. 나는 거기 담배를 끄지 못하고, 무
서워, 마구 울었다.
6
언제부터인가, 광장과 밀실이 모두 공포였다. 내가 숨쉴 수 있는 유일
한 곳- 광활한 난간의 문턱에 엉덩이를 걸치고 나는 오래 살았다. 대부
분 저 아래를 내려다 보았지만, 가끔은 밤하늘의 별도 쳐다본 것이 사
실이다.
별, 위험한 빛!
[감상]
낡은 것과 새로운 것. 그리고 이미 발견되었거나 거론되었거나 발견하지 못했거나 처음 발설한 것. 詩가 변태의 과정을 거쳐 가야할 길이 있다면 어떤 길일까요? 그런 면에서 이 시인의 시집은 참 그로테스크합니다. 그게 이 시인이 버틸 수 있는 장점이겠고요. 그런 기존의 시풍들과는 색다른, 그러면서도 나름의 깊이를 간직한 시입니다. 지금 낡은 관념의 포구에 정박중인 날들에 비한다면 배울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