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꽃/ 신용목/ 『작가세계』 2001년 겨울호
산수유꽃
데인 자리가 아물지 않는다
시간이 저를 바람 속으로 돌려보내기 전 가끔은 돌이켜 아픈 자국 하나 남기고 가는 저 뜨거움 물집은 몸에 가둔 시간임을 안다
마당귀에 산수유꽃이 피는 철도 독감이 잦아 옆구리에 화덕을 끼고 자다 나는 정년(停年)이 되어 버렸다
노비의 뜰에나 심었을 산수유나무
면도날을 씹는 봄햇살에 걸려 잔 물집 노랗게 잡힐 적은 일없이 마루턱에 앉아 동통을 앓고 문서(文書)처럼 서러운 기억이 많다
한 뜨거움의 대를 유배시키기 위해 몸을 키우는 물집 그 수맥을 짚고 산수유가 익는다고 비천하여 나는 어깨의 경사로 비탈을 만들고 물 흐르는 소리를 기다리다 늙는 것이다
시간의 문장은 흉터이다 둑 위에서 묵은 편지를 태웠던 날은 귀에 걸려 찢어진 고무신처럼 질질 끌려 다녔다 날아간 연기가 남은 재보다 무거웠던가
사는 일은 산수유꽃빛만큼 아득했으며
나는 천한 만큼 흉터를 늘리며 왔고 데인 데마다 산수유 한 그루씩이 자랐다
[감상]
"사는 일은 산수유꽃빛만큼 아득했"으리라는 발견, 빨간 열매가 상처의 물집이며 몸에 가둔 시간이라는 발상. 갑갑한 도심에서 벗어나 어느 수목원에 와 있는 것 같은 신선한 바람이 이 시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알전구를 따 담은 빨간 산수유가 유독 어른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