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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 한혜영

2002.07.12 11:48

윤성택 조회 수:1058 추천:176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한혜영/ 시작시인선 4



        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공무원을 하던 동생이 그 짓을 때려치우고 태평양을 건너 뉴욕으로 이주,
세탁소 주인이 되어버린 뒤  일년 내내 태평양 주름살과 씨름을 하고 있다
눌러도 눌러도 좀처럼 펴지지 않는
  태평양  그 시퍼런 치마폭 다려야할 물굽이는 첩첩이 밀려오고,  질 나쁜
가루비누처럼  시원찮은 영어는 좀처럼 거품이 일지 않아  다 때려치우고,
돌아갈까?
  니 맘 내 다 안다,
  안다 하면서도 치마폭 솔기 하나 잡아주지 못하는 이 누나도 사실은 엉망
진창으로 구겨진 바다를 입은 채 십년 내내 미친것처럼 출렁거렸다 어차피
이쪽과 저쪽  끝에서 팽팽하게 잡아주지 못할 바에야,  동생아 바다는 구겨
진 채로 펄럭일 수밖에 없으니
  펄럭이게 내버려두거라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다리미 바닥에 쩍쩍 들
러붙는 바다가 있어 오히려 다행한 일 아니겠느냐 아니겠느냐
이런 소리를 내며 물결이 밀려온다는 거, 머지않아 듣게 될 것이니
  고스란히 듣게 될 터이니



[감상]
좋은 시에는 자아와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심안(心眼)이 있습니다. 이 시는 그런 시선을 잘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태평양과 세탁소라는 서로 다른 제재를 상상력을 통해 하나의 울림으로 자리하게끔 합니다. 이는 "동생과 세탁소"라는 이야기에서 삶에 대한 본질을 심미적으로 투영할 수 있는 시인의 순수한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감상이 아닌, 이런 감성이야말로 우리가 지켜 가야할 것이기도 하고요. 태평양을 다릴 수 있는 시인의 활달한 상상력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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